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둘러싼 한국 사회의 논란이 절정에 이르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뿐 아니라 일상에서 자주 접하거나 쓰는 생활용품 전반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는 사실이 개탄스럽다. 최근까지 옥시레킷벤키저에 수사력이 집중됐는데 지금은 원료 제조사인 SK케미칼에 이어 다른 제조·판매사로도 수사 대상이 확대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제품에 대해 판매·제조·원료공급을 한 회사와 국가를 상대로 하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이 접수되기에 이르렀다. 그 대상은 정부 1~2차 조사에서 피해자를 양산한 제품 14개와 유공가습기메이트를 포함해 15개 제품이다.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에 든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처럼 흡입하면 폐에 치명적 여파를 미치는 독성물질이 또 다른 국내 방향제와 탈취제 제품에 쓰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소비자들 불안은 더욱 커져만 가고 있다.

전국유통상인연합회 인천지부, 인천평화복지연대, 인천소비자단체협의회 등이 대형마트를 비롯한 주요 매장에서의 옥시 제품 판매 중단을 촉구하고 소비자들에게 불매운동 동참을 당부하는 집단행동에 나선 배경엔 이 같은 국민적 불안이 자리잡고 있다.

이쯤 되면 옥시 가습기 살균제의 인체 유해성이 발단이 된 이번 사태의 책임으로부터 정부가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라고 규정할 수 있겠다. 굳이 헌법 조문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책임론이 도마에 오르게 된 것이다.

환경부는 가습기 살균제 원료로 사용돼 수많은 피해자를 낸 화학물질PHMG와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에 대한 관리를 적절하게 해왔느냐는 시비에 휩싸여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가습기 살균제가 안전관리 대상 공산품을 분류하지 않았던 사유에 대해 해명해야 할 처지에 내몰렸다. 화학세제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공포심은 소비자들이 손수 만들어 쓰겠다는 이른바 '노케미족'의 증가 현상마저 낳고 있다.

정부는 이번 기회에 시민 삶에 직간접 영향을 미치는 위해성 화학물질에 대해 전반적인 안전성 검증을 다시 벌이고, 제품 단위가 아니라 물질 단위로 사용 금지품목을 재편하는 등의 재발 방지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