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는 지금쯤(8)

 낙원군 사회안전부를 대표하는 안전부장이니까 당연한 일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매일 아침 반복되는 그런 행위가 곽병룡 상좌에게는 오히려 거북했다. 꼭 물위에 떠 있는 기름처럼 어느 때는 외롭게도 느껴졌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속내를 감추고 부드러운 웃음을 보였다.

 『일찍들 나왔구먼. 집에 아주머니와 아이들은 건강한가?』

 상좌 견장에 주눅이 든 하급 안전원들이 어쩔 줄을 몰라하며 허리만 굽혀댔다. 그때 사회안전부에서 볼가 승용차가 나왔다. 곽병룡 상좌는 운전수가 문을 열어주자 승용차에 몸을 실었다.

 곽상좌가 떠나고 얼마 있지 않아 적재함에 간의의자를 붙인 2.5톤 화물차 한 대가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보고 천천히 아파트 계단을 내려오던 김문달 중좌가 뛰어왔다. 정치부 부부장이었다. 먼저 나와 있던 감찰과장과 사로청(사회주의 노동 청년동맹의 약칭) 위원장이 다가가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낙원군 사회안전부 내부 살림살이와 안전원들의 인사권까지 틀어쥐고 있는 제2인자이므로 안전원들은 안전부장보다 더 두려워했다.

 정치부 부부장은 감찰과장과 사로청위원장을 붙잡고 8백만톤 알곡고지 점령에 관한 수령동지의 신년사 관철에 관한 이야기를 잠시 주고받다가 화물차의 앞좌석으로 올라탔다. 감찰과장과 사로청위원장은 정치부 부부장이 차 문을 닫는 것을 보고 다른 부원들과 같이 뒤칸으로 올라탔다.

 김문달 중좌가 탄 통근차가 떠나고 조금 있으니까 아파트 여기저기서 책가방을 어깨에 멘 인민학생들과 고등중학생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늘 하던 버릇처럼 아파트 경비초소 옆에 있는 나무 밑에서 기다렸다. 함께 가야 할 학생들이 다 내려오자 인민학생들은 인민학생들대로, 고등중학생들은 고등중학생들대로 줄을 서기 시작했다.

 인화는 아파트에서 1㎞ 정도 떨어진 새별고등중학교에 다녔다. 인민학교 때는 아파트 바로 뒤에 있는 은혜인민학교에 다녔었다. 곽병룡 상좌가 평양에서 신의주 도(道) 사회안전국으로 조동(전출)되어 온 지가 15년이 넘었고, 낙원군으로 오자마자 사회안전부 아파트를 배정 받았기 때문에 인화는 줄을 서 있는 인민학생들을 모두 다 알고 있었다.

 게다가 아버지가 낙원군 안전부장으로 복무하고 있기 때문에 인민학교 시절부터 학급장은 늘 도맡아 왔다. 그녀는 함께 가야 할 학생 40여명이 모이자 4열 종대로 정렬하게 한 뒤 복장검열을 했다. 소년단 넥타이를 매고 오지 않은 학생은 넥타이를 매고 오라고 했고, 휘장이나 리본을 부착하지 않은 학생에게는 빨리 가방에서 꺼내 달으라고 시켰다. 결함을 지적받은 학생들은 불만없이 리본을 꺼내 달았다.

 학생들의 복장점검이 끝나자 인화는 새별고등중학교 학생들을 출발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