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식문학평론가·한국근대문학관장    
▲ 이현식문학평론가·한국근대문학관장
▲ 이현식문학평론가·한국근대문학관장

최근 인천문화재단 한국근대문학관의 학예연구사가 인천에서 1920년에 발간된 '개척'이라는 잡지를 발굴, 학계에 보고하는 개가를 올렸다. '개척'은 그 동안 발간 사실만 알려져 있었을 뿐 실물이 공개된 적은 없었다.

'개척'은 근대 이후 최초로 지방에서 발간된 문예지였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문학 동인지라고 할 수 있는 '창조'가 발간된 지 꼭 1년 만에 인천에서도 문예지를 발간한 것이었다. 내리교회의 청년회에서 발간한 이 잡지는 당시 인천에서 문화운동을 펼쳤던 청년 활동의 단편들을 확인할 수 있는 귀한 자료다.

얼마 전에는 일제 식민지 시기를 대표하는 여성 소설가 최정희 선생이 소장했던 일본어 도서 전체가 인천문화재단의 한국근대문학관에 무상 기증되는 경사가 있기도 했다. 최 선생은 '국경의 밤'으로 유명한 시인 김동환의 부인이다. 일본 유학을 한 최 선생은 생전에 여러 권의 일본 도서를 소장하고 있었다. 이런 책들은 작가 연구를 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기초 자료이기도 하다.

다행스럽게도 한국문화를 사랑하고 아끼는 일본인이 이를 소장하고 있다가 자료의 가치를 알아본 인천문화재단의 한국근대문학관에 흔쾌히 무상으로 기증해줬다. 이 모두가 그 동안 문학관으로서의 본분에 충실했던 한국근대문학관의 노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문학과 관련된 각종 자료들은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우리의 고전문학과 근대문학의 유산들은 한국문화의 뿌리를 형성해 온 살아있는 증거들이다. 더구나 문학은 종이 위에 문자로 표현된 실체를 갖고 있는 대상이기도 하다. 춘향전이나 심청전, 김소월과 한용운, 윤동주의 시집들, 염상섭이나 현진건 같은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들의 소설책들은 모두 실체를 갖고 있는 책으로 존재한다.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채 시간이 흐르면 망실될 가능성이 높은 유물들이다. 문학관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인천문화재단이 인천시의 지원을 받아 설립, 운영하고 있는 한국근대문학관은 전국에서 유일한 공공 종합문학관이다. 자부하건대 전국 70여 개의 문학관 중에서 인천문화재단의 한국근대문학관 만큼 자료를 충실히 모으고 콘텐츠를 제대로 활용하는 곳은 거의 없다. 2만여점이 넘는 자료를 보유하고 한국 근대문학의 발전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곳은 전국 어디에도 없다. 하루 평균 100명이 넘는 관람객이 꾸준히 찾아오는 곳은 전국 문학관 가운데 한국근대문학관이 유일하다.

인천은 개항되면서 본격적인 근대 도시로 성장을 한 고장이다. 비록 외세의 강요에 의한 수동적 개항이었지만 개항은 어쨌거나 인천에게도 우리나라에게도 커다란 전환점이었다. 개항이라는 것은 외부의 물자와 사람이 들어오는 항구가 열렸다는 것을 뜻한다. 물자와 사람이 들어온다는 것은 곧 문화가 유입되는 것이다.

인천은 근대문화의 요람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개항장에 우리 근대문화의 뿌리가 된 문학관이, 그것도 개항기의 창고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들어섰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인천시는 특히 구도심인 개항장 일대의 문화적 활성화를 위해 문학관 설립을 적극 지원했다. 이곳을 방문한 관람객들은 규모는 작지만 내실있는 콘텐츠에 대해 놀라고 공간이 주는 상징성에 감동을 받는다. 그러면서 이런 문학관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인천의 높은 문화적 식견에 대해 칭찬한다.

그런데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국가가 문학진흥법을 제정하고 머지않아 국립문학관을 설립하기 위한 준비작업에 들어간다고 한다. 이런 소식이 한편으로는 반갑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여러 자치단체들이 벌써부터 너나없이 문학관을 유치하겠다고 나서는 형국 때문이다. 혹여나 이것이 지자체 간의 과열 경쟁으로 이어져 정치논리로 결정되거나, 문학 외부의 이유로 특정 지역에 선심성으로 배정될 것이 우려된다.

인천문화재단은 인천시의 협의와 승인 아래 한국근대문학관의 설립과 운영을 위해 몇 년간 자료를 모으고 전문 인력을 채용한 뒤에 적절한 입지와 공간의 규모, 자료에 대한 정리를 하면서 개관을 준비했다.

인천시도 이런 정도의 준비를 했는데 국가를 대표하는 문학관은 더 충실하게 자료를 모으고 전문가들에 의해 운영 전반에 대한 세부 계획을 수립하는 일에 힘을 모아야 한다. 문학관 유치에 나선 자치단체 역시 무조건 우리 지역이어야 한다는 단순 논리에서 벗어나 과연 그럴 수 있는 자격과 준비가 이뤄졌는지 자신을 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