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윤 작가, 소설 속 소설 형식 빌려 '스캔들 중점' 파란만장한 일대기 집필
▲ <나혜석, 운명의 캉캉>
박정윤
푸른역사
424쪽, 1만5000원

나혜석(羅蕙錫, 1896~1948)은 일제 강점기 화가로 신여성의 상징적 인물이다. 빼어난 미모와 함께 그림, 글, 시 등 다방면에 재주를 갖춘 재원이었다. 여성의 사회 참여 등을 주장한 그는 여성해방 운동가였다. 글재주가 있던 그는 일본 유학 때부터 여권신장에 관한 글을 발표했으며 귀국한 뒤엔 작가, 시인, 조각가, 여성운동가, 사회운동가,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일본 도쿄 여자미술학교 유화과에서 서양화를 공부한 그는 1918년 귀국해 화가, 작가, 교사를 지냈으며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이후 1918년 12월부터 박인덕 등과 함께 만세 운동을 준비, 1919년 3·1 만세 운동에 참가해 5개월간 투옥됐다 풀려난다.

나혜석은 성문화에 대해서 개방적이었다. 1935년 정조 취미론을 통해 순결과 정조(貞操)는 '도덕도 법률도 아닌 취미'라고 주장했으며 자신의 아내, 어머니, 누이, 딸에게는 순결함을 요구하면서 다른 사람의 아내나 어머니, 누이, 딸에게는 성욕을 품는 한국 남자들의 위선적인 행동을 비판했다. 당사자들의 의견이 존중되지 않는 결혼과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남성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소설 <나혜석, 운명의 캉캉>(푸른역사·424쪽)은 이런 나혜석의 사랑과 꿈을 볼 수 있는 신작이다.

2005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한 후 2012년 제2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프린세스 바리>, <목공소녀>, <연애독본> 등의 작품을 발표해온 작가 박정윤은 6년 간 이 책을 집필했다.

감성적 문체와 예민한 문제의식으로 밑바닥 삶을 촘촘하게 복원하고 사회의 여러 문제를 민감하게 읽어낸다는 평을 얻는 박정윤은 이 책에서 '영원한 신여성' 나혜석의 비극적 운명에 주목한다.

작가는 나혜석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일제강점기뿐 아니라 광복 이후 한국전쟁 전 사회상도 세밀하게 바라본다. 현모양처만을 여성평가의 유일한 잣대로 휘두르던 그 시대 작가가 그린 나혜석의 비극적 운명은 절절하기만 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자 '근대적 여성운동가'이며 '독립운동가'이자 '탁월한 문필가'. 이름에 따라붙는 수많은 수식어만큼이나 나혜석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열일곱의 나이에 오른 도쿄 유학길, 유부남 최승구와의 첫사랑, 한번 결혼했다가 상처한 김우영과의 결혼, 자식까지 둔 상태로 나선 세계여행길, 최린과의 깊은 관계.

'불륜녀'라는 지탄에 '이혼녀'라는 딱지까지 덮어쓴 나혜석은 그 와중에도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으면서 세상을 향해 "여자도 사람이외다!"라고 부르짖는다.

'인형을 원하는 조선 남성들'을 향한 그녀의 외침은 자신이 이혼에 이르게 된 경위와 남편 김우영을 위시한 남성들의 이기주의를 담은 <이혼고백서> 발표, 그리고 불륜 상대인 최린에의 위자료 청구 소송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현모양처만을 여성의 참다운 삶인 양 여기던 당시 사회에서 이를 두고 볼 리 만무. 나혜석의 이 같은 외침은 무시당하고 외면 받고 조롱당한다. 차가운 거리에서 아무도 모르게 맞은 최후는 그 결과였다.

작가는 나혜석의 비극적 운명에 다른 인물들의 운명을 중첩시킨다.

어릴 때부터 나혜석과 여러 날들을 함께하며 그녀의 운명에 깊숙한 흔적을 남긴 엘리제 마담, 나혜석의 죽음을 믿지 못해 그녀의 마지막을 파헤치는 엘리제 마담의 딸 윤초이, 아버지 독고휘열과 나혜석의 인연 때문에 그녀의 삶을 소설로 그리는 독고완, 뜻하지 않게 독고완과 윤초이의 원고를 습득하면서 자신의 할아버지, 할머니와 나혜석의 인연을 알아가게 되는 '나'.

작가는 소설 속 소설이라는 틀을 빌려 이들의 운명을 씨줄날줄로 조밀하게 엮으며 파국의 길을 걸어가는 나혜석을 그려낸다. 1만5000원


/김진국 기자 freebird@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