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어디 가냐. 우린 3년 내내 머리에 왕소금을 얹고 다녔잖아."

고교 동창들을 만나면 아직도 이런 농담을 주고받는다. 교모(校帽)에 소금과 등대를 형상화한 교표가 달려있었기 때문이다. 제물포고의 교훈은 '학식은 사회의 등불, 양심은 민족의 소금'이다. 그 양심을 실천하기 위해 감독 선생님이 없는 '무감독 시험제'와 당시 전국 어느 학교에서도 보기 드문 '개가식 도서관'을 운영했다.

당시 선생님들은 "육군사관학교에서도 시행하지 않는 것"이라며 '자긍심'과 '양심'을 늘 강조했다. 제물포고의 무감독 시험제는 올 봄 중간고사를 치르면서 시행 60주년을 맞는다. 총동창회는 이것을 문화재로 등록하려고 한다. 이 학교 출신인 필자는 무감독 시험을 경험했다. 무형문화재가 된다면 '문화재 이수자'가 되는 셈이다.

시험 당일이면 한바탕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된다. 1학년→2학년, 2학년→1학년 같은 반으로 이동한다. 모두 다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절반만 이동해 1, 2학년생이 분단별로 앉는다. 최소한의 커닝 방지책으로 '인간 가림막'을 설치한 것이다. 선생님은 시험지를 나눠 주고 교실을 나간다. 시험이 끝나기 전에 돌아와 답안지 걷는 일만 한다. 3학년 때는 이동하지 않고 자신의 교실에서 시험을 치렀던 것으로 기억한다.

2학년 6반이었던 필자는 1학년 6반 교실로 이동했다. 자리를 잡고 보니 옆줄 대각선 앞에 교회 후배가 앉아 있었다. 문제를 풀다가 불현듯 그의 답안지를 보니 영 신통치가 않았다. 나가면서 손가락으로 답을 몇 개 짚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렇게 하지 않고 그냥 퇴실했다. 졸업 후 그는 신학대에 입학했고 현재 부산의 대형교회 담임목사로 사역하고 있다. 필자의 부정행위가 한 목회자의 양심에 평생 흠집을 낼 뻔했다.

300명의 선량(選良)이 뽑혔다. 그 어느 부류보다 양심(良心)을 지녀야할 사람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새롭게 디자인된 20대 국회의원 배지는 소금을 형상화했으면 어땠을까. 의원들의 감독은 국민이다. 그들은 '무감독제' 시험처럼 양심껏 의정활동을 해야 한다. 제물포고 학생들이 시험을 치르기 전에 함께 외치는 선서문이 있다. 국회 첫 등원 선서식에서 선량들이 이것을 낭독하게 하면 어떨까. '양심의 1점은 부정의 100점보다 명예롭다'. /굿모닝인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