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인천 편집장


1995년 서울에서 잡지 기자로 일할 때 취재 차 중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상하이 번화가 옷가게에서 조금 '쇼킹'한 장면을 목격했다. 현지인 여자가 윗옷 한 벌을 고른 후 입어 보길 원했다. 점원은 우리네 동네 슈퍼마켓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커먼 비닐봉지를 꺼내더니 불쑥 그 손님 머리에 뒤집어 씌었다. 그리곤 옷을 입혔다. 그 광경에 놀란 필자에게 동행한 가이드는 새 옷에 머리칼 이물질이 묻을까봐 그런 것이라고 설명했다.

얼마 전 인천을 찾았던 6천명의 아오란그룹 유커들은 20년 전의 그들이 아니었다. 하나같이 세련된 모습이었다. 그들은 '별 그대' 촬영지들을 방문해 인증샷을 찍고 월미도에서 바닷바람 맞으며 성대한 치맥 파티를 했다. 그리곤 '세련된' 쇼핑을 하기 위해 서울로 달려갔다. 아쉽게도 그들은 인천에서 꼭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돌아갔다.

이국땅에서 유랑하고 있는 중국 종(鐘)이다. '별 그대'의 촬영지 송도 석산에서 몇 걸음 떨어진 인천시립박물관 뒤뜰에는 송(宋), 원(元), 명(明)대의 대형 범종 3구가 놓여있다. 중국에서 조차 세 왕조의 종이 함께 있는 것은 드문 일이다. 이 범종들은 기구한 사연을 지니고 있다.

1942년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전쟁 물자가 매우 부족했다. 한반도뿐만 아니라 중국대륙에 이르기까지 강제로 쇠붙이를 모아 무기로 만들었다. 이때 중국 하남성 사찰에 있던 범종들을 약탈해 인천육군조병창(부평)으로 옮겼다. 용광로 쇳물이 되기 일보직전 일본의 패망으로 범종은 겨우 '목숨'을 보전했다.

광복 후 인천시립박물관 건립을 준비하던 초대관장 이경성 선생이 이것을 수거해 박물관으로 가져왔다. 지난해 9월 이 이야기를 제보 받은 중국 신화통신 기자는 한달음에 달려왔다. 이 내용을 심층 취재해 신화넷, 운남TV 등에 방영했다.

이제 중국은 시커먼 비닐봉지를 손님의 머리에 뒤집어씌우는 수준이 아니다. 해외여행 패턴도 변하고 있다. 이른바 '유커의 3탈(脫)', 즉 탈서울, 탈패키지, 탈호텔 등으로 애써 쇼핑만 하지 않고 더 이상 서울에서만 맴돌지 않는다. '별 그대'는 영원히 빛나지 않을 것이다. 치맥도 식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이제라도 시립박물관의 범종 같은 인천만의 '썸씽 스페셜' 스토리를 마련해야 한다. /굿모닝인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