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쿵후계의 전설 … 홍가권·무단팔극권 등 다양한 무술 수련
 
푸근한 미소와 선한 눈매가 여느 동네 아저씨와 같다. 중국어를 혼용하며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게 예사롭지 않다. 씁쓸하면서도 뒷말이 달달한 중국 차(茶) 한잔을 권할 때 화교임을 읽었다.

그리고 외람되게 부탁했다. 쿵후의 진정한 모습을 보고 싶다고.

그는 쑥쓰러워하며 도복으로 옷을 바꿔 입었다.

그러자, 황색(黃色) 도포에서 품어 나오는 기(氣)가 사방을 압도했다. 눈빛은 어느새 날카로운 매 눈의 영롱함으로 바뀌었고, 걸음 걸음은 깃털 마냥 고요하며 가벼웠다. 그러나 발딛음은 천근이 담은 듯 묵직했다.

그의 절제된 동작에 감탄도 잠시, 범상치 않음에 온 몸이 경직된다.

중구 내동에서 정무문 쿵후 총본관을 운영하는 필서신(畢庶信·59)을 통해 '인천은 중국무술 쿵후의 고향'이란 게 귀결된다. 인천에 남아 있는 마지막 화교 직계 무술인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국내 쿵후계에서 필서신의 무명(武名)은 범접할 수 없다.

인천에 뿌리가 내려 꽃이 핀 팔괘장(八卦掌)을 비롯해 홍가권(洪家拳), 무단 팔극권(八極拳) 등의 직제 제자이다. 팔괘장은 동해천-정정화-이문표-노수전-유순화-필서신, 무단팔극권은 이서문-유운초-필서신, 홍가권은 황비홍-임세영-장극치-필서신 순으로 계보가 이어지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의 수련기는 한국 쿵후계의 전설이다.

인천에서 중국인 부모 사이에서 화교 2세로 태어나 16세 때 팔괘장(八卦掌)의 고수였던 화교 사부 유순화(劉順華)를 만나 중국 무술의 도(道)를 걸었고, 1977년 소림 홍가권(洪家拳)의 고수 장커치(張克治, 장극치)에게서 홍가권의 권법 취권(醉拳)과 사권(蛇拳) 사사받으며 황비홍(黃飛鴻)의 직계 제자가 되어 계보에 올랐다. 이외에도 영춘권(詠春拳), 당랑권(螳螂拳), 태극권(太極拳), 팔극권(八極拳) 등을 수련했다.

필 사부는 "예전에 백여명이 넘던 쿵후 도장은 이제 발길이 줄었지만 인천이 쿵후의 고장이자, 쿵후를 잊으면 안된다는 마음에 차이나타운에 인천 쿵후 박물관을 준비 중이다"고 말했다.


/글 이주영 기자 leejy96@incheonilbo.com
/사진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관련기사
[Week &] 인천 무술, 중국무술 쿵후의 고향… 무림史 명맥 잇다 中 산둥성 '노수전' 팔괘장 전수 차이나타운 화교 중심 무술 연마 현재 '필서신 관장'만 유일 계승 한반도에 쿵후가 유래된 것은 명확치가 않다. 다만 19세기 말 인천에 유입된 화교를 통해 인천이 한반도를 넘어 중국무술 쿵후의 고향이라고 일컫는 무술계의 명언만 내려 오고 있다. 130여년의 짧은 세월간 차이나타운 의선당을 중심으로 화교 중심으로 내려온 쿵후가 연마됐고, 3대를 지나 문파가 정립됐다. 정통 '팔괘장'을 뿌리내린 노수전, 당랑권의 강경방, 임품장은 물론 여러 무술을 섭렵하고도 초야에서 후학을 양성한 필서익까지 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