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중반 선친은 송현동 수도국산과 이어진 '돌산'에 일제가 파놓은 방공호에서 버섯재배 사업을 하셨다. 필자가 어릴 적이라 혼자서는 무서워 끝까지 가보질 못할 정도로 그곳은 무척 길었다. 인근 동네에는 일제 때 조선이연금속(현 현대제철) 등 큰 공장에 근무하는 일본인 간부 주택이 많았다. 집과 집 사이 공터에는 작은 방공호들이 있었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듯했던 그곳은 우리들의 아지트이자 놀이방이었다.

인천에는 여전히 일제가 파놓은 방공호가 곳곳에 남아 있다. 자유공원 맥아더동상 뒤편 공영주차장에는 입구와 내부가 아치형으로 된 방공호가 있다. 6.25전쟁 때는 인민군들이 폭약 저장소로도 사용했다. 옛 시장관사였던 인천역사자료관의 방공호는 인천상륙작전 때 인근 시립박물관(현 제물포구락부)의 임시 유물보관소로 활용했다. 자유공원 석정루 절벽 아래에 있는 방공호는 한때 그곳 레스토랑의 와인 저장소로 사용하기도 했다. 인천기상대 정문 옆의 단단한 방공호는 현재 '세계지진관측망 인천관측소'로 변신했다.

인천여상 아래 거대한 암석을 뚫은 방공호는 옛 인천신사의 승려나 참배객이 급히 피신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율목동 긴담모퉁이길 중간쯤에 있는 방공호는 신흥초교와 연결돼 있다는 풍문이 떠돌 만큼 그 규모가 만만치 않다. 미림극장 건너편 헌옷 가게 안에는 쌍굴 형태로 된 특이한 방공호가 있다. 부평구 산곡동 화랑농장 부근 호봉산 밑에는 방공호 7개가 모여 있다. 40년 전부터 새우젓 보관 창고로 사용돼 흔히 '새우젓 굴'이라고 부른다.

방공호는 일제의 침탈과 강제 노역의 또 다른 증거다. 징용 산업시설, 적산 주택 등에 대한 관심은 높은데 반해 방공호에 대한 발굴 조사는 전무하다시피하다. 지난해 말 중구 항동 파라다이스호텔 초입의 한 선구점에서 동굴이 '발견'돼 관심을 끌었다. 호텔 지하로 연결된 이 동굴은 방공호, 군수창고 등으로 추정된다.

중구는 탐사에 나선다고 했지만 아직 진척된 소식이 없다. 이참에 인천 전 지역 방공호에 대한 신고 접수와 발굴 조사를 했으면 한다. 아픈 이야기를 품고 오랜 시간 개인 주택 밑에서 신음하고 있는 방공호도 적지 않을 것이다. 지역 이야기와 연계해 다크투어리즘을 활용한 교육 현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유동현 굿모닝인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