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 때 부평 만월산 약사암으로 봄 소풍을 갔다. 점심시간이 되자 담임선생님은 우리들에게 주의를 줬다. "아무데나 오줌 누지 말고, 나무 꺾지 말고, 쓰레기 버리지 말고…." 모든 말은 귓바퀴 근처에도 오지 못하다가 "멀리 가지 마라. 이 동네 문둥이한테 잡혀 먹는다"라는 말은 달팽이관에 바로 꽂혔다.

'문둥이?' 개구쟁이들은 호기심이 발동했다. 도시락을 까먹자마자 친구들과 함께 넘지 말라는 언덕으로 향했다. 작은 고갯길로 접어드는 순간 눈앞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밀짚모자에 허름한 회색 옷. 우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달렸다. 언덕을 굴러서 정신없이 내려 왔다.

내일 모레(2월28일)는 '문둥병 시인' 한하운이 자신의 시처럼 '파랑새'가 되어 푸른 하늘로 날아간 지 40주기가 되는 날이다. 그는 1950년 유리걸식하던 수십 명의 한센병 환자를 이끌고 지금의 부평가족공원(공동묘지) 인근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야산을 개간하고 닭을 쳤다. 그 곳이 바로 약사암 너머 부평농장이다. 한때 인천 대부분의 달걀은 그 곳에서 공급된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2010년 필자는 한하운을 취재하기 위해 모 재단 측에 연락을 취했다. 수 차례 거절 끝에 그와 함께 생활했던 재단 관계자를 간신히 만날 수 있었다. "이제 다 잊힌 이야기인데 뭘 알려고 하느냐." 그들은 절실히 잊고 싶어 했다. 박목월 선생이 농장에 와서 시 낭송회를 했던 일, 취학통지서를 받고도 인근 학교에 자식들을 힘들게 입학시켰던 일 등을 겨우 전해 들었다.

여전히 잊고 싶어도 잊히지 않는 그들의 이야기들이 있다. '처음이자 마지막 문둥병 시인' 한하운을 우리 인천이 영원히 품었으면 한다.

지금이라도 민관이 뜻을 모아 천형(天刑)을 이겨낸 땅에 시비(詩碑)를 세우고 문학상도 제정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때 우리를 구르게 했던 밀짚모자에 허름한 회색 옷의 남자는 그냥 절 방으로 들어갔다.  /굿모닝인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