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춤꾼의 '명무(名舞)'…곱다 못해 엄숙하고 절묘하다 못해 신비롭다
▲ 지난 13일 수제자 김묘선(왼쪽) 선생이 김명자 우봉이매방춤보존회장에게 평전을 헌정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승무·살풀이춤' 중요무형문화재 2개 보유
우리나라 전통춤의 역사적 맥락살펴 조망


'나도…, 춤… 추고 싶다.'

'우리나라 무용계의 큰 별' 고 우봉 이매방 선생은 지난해 7월24일, 신음하듯 말을 내뱉었다. 88세 무용가의 흐릿한 눈 앞으로 젊은 춤꾼들이 장삼자락을 흩날리고 있었다. '10회 우봉 이매방 전국무용대회'가 열리는 자리였다.

획 휙, 희고 긴 천자락이 정중동의 선으로 무대를 그릴 때마다, 노(老) 무용가의 눈 앞으로 파란만장했던 지난 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의 깊은 눈동자에 안개가 어렸다. 그로부터 보름 뒤 우봉 선생은 '세상 소풍'을 끝내고 귀천한다. 그가 평생 걸어온 춤의 철학, 삶의 외길이던 '나도 춤 추고 싶다'란 유언을 남긴 채.

이매방 선생은 평생을 무대에서 살다가 무대에서 사라진 우리 시대 진정한 춤꾼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중요무형문화재 27호 '승무'와 97호 '살풀이춤' 2개를 보유한 예술가였던 이매방. 생전 그의 몸짓 자체가 춤이었고, 그가 내뱉는 말은 모두 춤의 교본으로 제자들에게 다가왔다. 그런 이매방 선생의 일대기를 기록한 책이 나왔다.

▲ <하늘이 내린 춤꾼 이매방 평전>
문철영
새문사
292쪽, 1만7000원


<하늘이 내린 춤꾼 이매방 평전>(새문사·292쪽)은 '하늘이 내린 춤꾼'의 삶 88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손만 올리면 춤이 되는' 이매방 선생은 일제강점기인 1927년 목포에서 태어난다. 그가 살던 마을은 서민들의 애환이 깃든 곳이자 술집과 유곽들이 즐비한 곳이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이매방은 자연스럽게 '권번'에서 춤을 배우고 익힌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예술은 권번에서 주로 계승되고 있었다.

7살 때부터 권번에서 춤을 배운 이매방의 데뷔 무대는 그가 15살 되던 해 목포 역전에 마련한 가설무대였다. 당시 이 무대에선 '임방울의 명인명창대회'가 진행됐는데 여기서 승무를 추면서 비로소 이매방은 관객들을 마주한다.

이매방은 이후 일본군으로 징집됐다가 탈출하고 6·25전쟁 때는 인민군이 됐다가 다시 국군이 되는 등 격렬한 한국 현대사의 시대의 물결에 휩쓸려 살아간다. 그런 폭풍우 속에서도 우리나라 전통춤의 '원형'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춤을 향한 열정 때문이었다.

▲ 2010년 7월 이매방 선생이 목포 이매방 전수관 앞 바닷가에 앉아 있던 모습.


저자 문철영은 일제강점기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해 식민지 근대화 시기 천박하다고 내쳐졌던 승무는 가장 조선적인 것으로, 그것은 이매방의 춤에 배어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이매방 춤의 뿌리를 찾기 위해 우리나라 전통춤의 역사적 맥락을 살펴보며 이매방의 삶을 밀도있게 조망한다.

책을 읽다보면 이매방이 부나 명성, 심지어 후견인조차 없이 혼자서 춤을 추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혼자서 눈물을 흘리고 탄식하며 고행의 바다를 건너온 그 신산하고 처절한 삶을 말이다.

앞서 지난 13일 평전 출판을 축하하는 기념회가 한국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열렸다. '우봉 이매방 춤 보존회'가 주최한 '하늘이 내린 춤꾼 우봉 이매방 평전 출판기념회'는 100여 명의 무용인, 문화예술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1시간 정도 진행됐다.

문철영 교수는 인사말에서 "이매방 선생은 생전 마음이 고와야 춤이 곱다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마음은 춤을 향한 순수한 마음을 얘기하신 것"이라며 "춤이 어떤 것을 얻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춤 자체가 목적이었던 분"이라고 회고했다.

앞서 그는 평전에서 "한국의 전통춤은 이매방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밝힌 바 있다.

표재순 문화융성위원장은 "선생의 춤은 머리로 이해할 수 없고 말로 설명할 수도 없으며 가슴으로만 느껴질 수 있다"며 이매방 선생의 예술성을 높이 평가했다.

나선화 문화재청장은 "서구문물의 유입으로 우리 전통가치 인식을 못 했던 시절에 이매방 선생은 전통을 세우고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다"며 "춤과 운율은 자연과 대화하며 영을 수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규 국민문화유산신탁이사장은 이매방 선생의 수제자인 김묘선 선생을 언급하며 "김묘선 선생이 일본에서 우리 춤사위를 지켜가듯이 우리춤은 면면히 살아있다"며 "우리 것을 지켜주는 게 우봉 선생에 대한 보답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 1960년대 이매방 화랑무(왼쪽)와 초립동.

'승무 전수교육조교'인 김묘선 선생은 이날 이매방 선생의 부인인 김명자 우봉이매방춤보존회장에게 <하늘이 내린 춤꾼 이매방 평전> 책을 헌정했다. 김 전수조교가 책을 바친 것은 이매방 선생이 누구보다 아끼던 수제자이기 때문이다.

김 전수조교가 이매방 선생과 처음 인연이 닿은 때는 그가 1983년 서울 마포에 있던 이매방 선생의 무용연구소를 찾으면서다. 이매방 선생은 까탈스러운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젊은 무용인의 춤을 향한 열정과 노력, 재능을 보고 김묘선을 수제자로 삼는다. 이후 제자의 끼니를 직접 챙겨주는가 하면, 국악콩쿠르 때는 동대문시장에서 직접 천을 구입해 삶고 풀을 먹여 제자에 입혀주기도 했다.

김 조교는 1989년 승무를 이수하고 전통 춤의 세계화를 위해 1990년엔 미국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다. 김 전수조교는 37살에 서울 전통예술공연 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는 등 명무의 모습으로 스승의 은혜에 보답했다.

2005년 승무전수교육조교가 된 김묘선씨는 현재 일본과 한국을 분주히 오가며 승무의 세계화와 대중화에 고을 들이고 있다. 김 전수조교는 인천에서 오래전 '발림무용단'을 만들어 지금까지 활동해오고 있으며, 이때문에 '인천이 낳은 춤꾼'으로 통하고 있기도 한다.

이 책은 쓴 저자 문철영은 단국대 역사학과 교수로 서울대 국사학과를 나와 같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 사상에 대한 탐구와 역사인물의 내면세계 이해에 주력해온 그는 무용계를 비롯, 한국 근현대 예술계 동향에 대한 이매방의 경험담을 채록하면서 '동아시아 현대사 속의 매란방과 최승희, 그리고 호남예술의 진수 이매방', '인간 이매방과 그의 춤' 등 이매방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최근 역사학과 심리학(정신분석학)의 만남을 모색 중이며 <이규보 평전>, <인간 정도전> 등의 저서가 있다. 1만7000원


/김진국 기자 freebird@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