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진개문화마당 황금가지 대표
이종복 터진개문화마당 황금가지 대표

한 반에 칠십 명 가량의 학생들이 열두 반 있다 하면, 대략 한 학년에 팔백 명이 족히 넘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삼학년을 더해 대략 이천 명 이상이 학교 운동장을 왁자하게 들썩거리며 뛰어다녔을 거라는 얘기다. 오죽하면 운동장에서 축구 한판 제대로 하려고 일찍 도시락을 까먹었어도, 이미 초만원인 운동장은 흙먼지 속에서 천방지축 폭발음을 내며 튀어 오르는 축구공들만 난무했을 지경이니 말이다.

어느 월요일, 몸이 불편해 교실에 남은 일부를 제외한 학생들은 아침조회에 참석하려고 운동장에 모였다. 초등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좌우로 나란히' 라는 구령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군인처럼, 검정 교복을 두른 앳된 학생들은 오와 열을 맞추려 바지런 떨었다. 그 때, 구관 건물에서 연기가 치솟더니 불이 났다는 소리와 함께 운동장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마루에서 시작됐을 불은, 삽시간에 교실과 교정의 버드나무 몇 그루마저 태우고는 겨우 진압되는 사건이 발생했던 것이다.

이후, 그 사건을 두고 친구들은 몇 반의 누군가가 담배를 끄려다 꼬바리를 마루 틈으로 빠뜨려서 그랬다 했고, 걸레에 왁스를 묻혀 빛나도록 광을 냈으니 불이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는 나름의 추론들을 속속 내놓았다. 기억에도 나이가 있다면 불혹을 훨씬 넘겼을 그 사건은 중학생 시절의 핵과도 같았다.

병적으로 수업 시간에 침을 뱉어내는 '퇘퇘 선생님'과 수학여행을 마친 귀향길에서 '수인산업도로' 어느 논두렁에 버스가 거꾸로 처박혔던 사건도 잊을 수 없다. '201'이란 숫자를 사인으로 쓰시던 이무일 선생님은 무슨 느낌이 와 닿았는지 평상시와 다르게 내내 "제자리에 앉아"라는 주문을 연발해 원성을 샀지만, 사고 후 깨진 창을 통해 전원이 무사히 구조된 뒤 "니들, 나 아녔으면 큰 일 날 뻔 했어! 짜샤."를 연발하며 비장하게 미소 짓던 그 모습은 여전히 기억의 온상에서 옛 것 그대로 생생했다.

중학교 시절을 딱히 떠올린다면 이 정도 외에 그다지 내세울만한 기억들은 딱히 없었다. 일기장을 비롯한 기록물들이 가난이란 관문을 통과하며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십육절지로 대충 만들었어도 괜찮았을 법한 졸업앨범조차 '가정의례준칙' 준수라는 미명하에 만들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바득바득 기록을 남기고 현장성이 담긴 사진들을 끌어 모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기억과 기록은 동시대를 어깨에 짊어진 동류들에 있어서는 값진 자산임에 틀림없다. 자산은 곧 자본의 뿌리가 된다.

요즘, 지난 시절에 대한 시청자의 '응답'을 구하는 TV드라마가 선풍적 인기를 끈다. 구체적 연도들을 제시해 시청자들로 하여금 시대적 공감의 영역을 확대해 불특정 다수에게 추억을 회상케 한다는 이유다.

한 번도 제대로 본적이 없기에 딱 집어 말하기 어렵지만, 자본주의 시스템이란 전체 그림에서 과거를 자본화시키는 과정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어렵게 이해할 것 없이 추억도 돈이 된다는 얘기다. 오래된 기억, 게다가 이를 증거하는 물증과 공감대까지 확실히 얻어낸다면 더할 나위 없는 자산이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근대 개항 도심권이 지닌 외형적 특성과 그 안에 내포된 수많은 이야기들은, 인천의 효용가치와 미래가치를 통시적으로 갖는 질료로서 재구성할 수 있다. 외적 확장과 외형 보수에도 힘써야겠지만 무엇보다 내용이 충실하게 보장돼야 그 의미에 진정성이 보태진다는 사실이다.

이에 따라 '인천가치재창조'는 과연 인천만이 갖는 독자성과 예술성마저 담보하고 있는지, 거기에 휴머니즘이란 인문학의 옷을 제대로 갖춰 입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기성(복)은 천편이 하나의 운율에 의해 획일화 되어가는 것을 상징한다. 빡빡머리에 뒤집어 쓴 검정 교모, 얼마나 클지 모르고 옷값도 생각해야 한다며 무조건 크게 입혔던 검정 교복 세대들은, 이를 일찍이 경험해야 했다.

과거도 돈이 된다. 좀 천박해 보이는 표현이지만, 표현의 졸속함을 애써 부인해가며 점잖게 자산과 자본을 들먹이기엔 충격파가 모자라기 때문이다. 무형의 자산은 인간의 지혜가 전통과 예술이 조합해 상품화됐을 때 비로소 인정받는 공유정신의 산물이다. 필자가 경험한 중학시절은 시와 산문으로 이미 작품화됐던 것들이고 미소하게나마 이윤창출에 보탬이 됐었다.

따라서 이젠 독자들이 기억을 외적으로 집약시킬 단계이다. 선택과 집중은 그 과정이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는 고민에 고민을 더해야 할 일이지만, 이를 다양한 경로로 안내하는 것은 시정부와 기초 지자체의 몫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