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연 수필가·전 인천시약사회장
▲ 김사연 수필가·전 인천시약사회장

생각을 바꾸면 역사를 바꿀 수 있고 생명을 구할 수도 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이를 시기한 사람이 "대서양으로 계속 가면 누구나 만나게 돼 있는 섬을 발견한 것이 그렇게 대단한 공로이냐?"고 비아냥거렸다. 화가 난 콜럼버스는 바구니 속에 있는 삶은 달걀을 그에게 주며 탁자 위에 세워보라고 했다. 그는 하지 못했다.

콜럼버스는 달걀 한 쪽 끝을 깨 탁자 위에 세웠고, 이를 본 사람들은 쉽게 달걀을 맨바닥에 세울 수 있었다. 남이 한 것을 따라 하기는 쉽지만 처음 방법을 생각해 내는 일은 어렵듯이 탐험도 마찬가지라는 콜럼버스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그 후 신대륙을 발견한 공로를 우습게 여기지 않았다.

오랫동안 이석증으로 고통을 받던 아내를 완치시킨 것도 한약으로 근본 치료를 해야 한다는 생각의 전환 덕분이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던 날 아침, 매실밭으로 향하던 나는 아내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차를 돌려 귀가했다.

아내는 어지럽다며 앉아있지도 누워있지도 못하고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며 고통을 호소했다. 병원에서는 이석증은 별일 아니라는 듯 귀 좌우로 충격을 주는 물리치료와 간단한 약물 투약 후 귀가를 종용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아내는 도저히 견딜 수 없다며 입원을 자청했다.

CT(컴퓨터 단층 촬영법) 촬영과 물리치료를 하는 동안 고통을 참지 못한 아내는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증상이 진정되는 듯해 퇴원을 했지만 몇 개월 후 재발됐고 증상이 심해 119구급차량에 실려 응급실로 가야만 했다. 이런 과정을 몇 차례 반복하는 동안 소식을 전해들은 친지들은 거의가 이석증을 앓은 경험이 있지만 재발되지 않았다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귀 안에서 몸의 균형을 담당하는 전정기관에는 작은 칼슘 덩어리가 있는데 이것이 외부 충격이나 스트레스 또는 몸이 허약해져 제자리를 이탈하면 어지러워지는 증상이 이석증이다. 결국 이석증 치료에서 국내 최고라는 분당의 한 병원까지 찾아갔으나 한 달이 지나도록 별 소득이 없었다. 혹시나 뇌의 이상을 의심한 아내는 처음 치료를 했던 병원을 찾아가 다시 입원을 하고 MRI(자기 공명 영상법) 검사까지 했다.

결과가 정상으로 나오자 나는 한방으로 치료를 하자는 주장에 목청을 세웠다. 재발의 빈도가 잦아질 때부터 나는 임시변통적인 물리치료와 향정신성 의약품 투약보다 근본적인 치료, 즉 신허증(腎虛症)을 다스려야 한다고 조심스럽게 비쳤지만 아내는 선뜻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적지 않은 치료비를 낭비한 후에야 아내는 내 뜻을 받아들여 한방과립제를 복용했고 3개월 말미에는 좌우로 누울 수도, 뛰어다닐 수도 있었고 하마터면 취소할 뻔 했던 신정 차례도 지낼 수 있었다.

내가 한방을 신뢰하는 이유는 양방과 한방은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기에 그 점을 잘 이용하면 꺼져가는 생명도 살릴 수 있다는 체험을 했기 때문이다. 30여년 전, 보약보다 치료를 위주로 하는 고방(古方)을 배우던 당시 이웃에 사는 분이 약국을 들러 하소연했다.

남편이 대수술을 했는데 경과가 좋지 않아 의사가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단다. 남편은 종손이어서 종친회 어른들이 마지막 문병을 했고 병원에서 퇴원을 권해 집에서 장례 준비를 하며 사용할 소독약을 구입하러 왔단다.

순간 환자를 살릴 수 있는 단방 처방이 떠올랐고 나를 믿는다면 달여 드리라며 무료로 한약을 지어 드렸다. 며칠 후 약국을 찾아 온 부인은 남편의 상처가 아물고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며 한약을 더 요구했다. 환자는 오랫동안 생명을 연장했고 종친회 어른들은 종손을 살려낸 '화타'라며 감사의 인사를 보내왔다.

한약에 자신감을 갖게 된 동기는 80년대 초 약국 건물을 신축하며 얻은 중증 화병을 내 처방으로 완치했기 때문이다. 건축 한 번하면 수명 30년이 감축된다더니 스트레스로 화가 치밀어 오르는 순간 속이 울렁거리며 구토증을 수반하는 것이 위암의 증상과 흡사했고 눈앞이 깜깜해지면 의식을 잃고 쓰러지곤 했다.

풀뿌리가 무슨 약이냐고 폄하하는 사람들처럼 한방 치료라는 생각의 전환을 하지 못했다면 아마도 아내와 나는 종합병원에서 각종 검사를 받으며 혹시나 오진으로 대수술과 항암 치료까지 받았을지도 모른다. /김사연 수필가·전 인천시약사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