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김형수의 행복한 노년] 성소수자, 이반(異般)의 커밍아웃
[김형수의 행복한 노년] 성소수자, 이반(異般)의 커밍아웃
  • 김진국
  • 승인 2015.12.02 00:05
  • 수정 2015.12.01 19: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천금빛평생교육봉사단 자문위원
김형수.jpg
▲ 김형수 인천금빛평생교육봉사단 자문위원

벽장을 여니 퀴퀴한 묵은 냄새가 바깥세상으로 나왔다. 쉽게 손 언저리에 닿고, 닳고 닳은 삶의 도구들보다 빛바랜 물건들이 외부와 단절된 닫힌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일상생활의 필요보다는 마음속에 있을만한 추억들도 숨겨져 있었다.

가족에게 조차 들춰내 놓지 않고 꽁꽁 숨겨온 자신만의 그 무엇이 벽장에 있다. 누구에게도 밝힐 수 없는 난처한 골칫덩이가 있는가 하면, 어둔 한편에 잡동사니처럼 낡은 졸업앨범도 긴 세월을 지키고 있다. 벽장은 쓸모없이 버려진 공간 같지만 말 못할 사연을 담는 비밀의 장소인 것 같다.

쓰다 남은, 버리기에는 아까운 소품들도 있지만 간혹 사회문제와 결부된 부정 축재와 검은 뒷돈들이 벽장에서 드러나기도 한다. 요즘처럼 저성장, 저물가 현상에 따른 소비부진의 원인으로 벽장 속에 너무 많은 돈이 잠겨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어린 시절, 벽장은 숨어 흐느끼다 잠이 들었던 반항과 위로의 피난처였다. 부모를 여위고 온갖 고초를 겪으며 불우한 시절을 보낸 해리포터의 계단 밑 벽장은 비밀의 방으로 묘사되었다. 개인에게 신비스럽고 소중한 공간이었던 그 벽을 허무는 일이 세간의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가끔 성소수자가 자칭하는 이반(異般)의 커밍아웃도 벽장을 부수고 나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 커다란 용기와 결단이 벽장에 있었다.

성소수자에 대한 반응은 이채롭다. 교황, 미국 대통령의 성소수자에 대한 행보에도 찬반 논란이 거세다. 이탈리아는 가톨릭교회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동성부부의 자녀입양, 상속, 유족연금 지급 등을 인정하는 동성결혼 합법화 법안을 추진하고 있을 정도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낙태, 피임을 허용할 수 없고, 동성애를 죄로 규정하는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을 고수하지만 성소수자들이 사회적으로 소외받거나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진보적인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다. 미국 전역에서 동성결혼을 합법화 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성소수자 잡지 '아웃'의 표지모델로 등장하기까지 했다. 성소수자의 협력자, 영웅, 우상이 됐다.

21세기에 들어 커밍아웃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과 반응도 과거보다 개방됐다. 지난 6월에는 서울에서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등이 참가하는 열여섯 번째 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 성소수자 뿐만 아니라 진보적 기독교 단체도 참가했다.

그런가 하면 서울대 총학생회장 당선자의 커밍아웃에 대한 왈가왈부가 시끌벅적하다. 공교롭게도 학생회장 선거공약 중 하나가 기독교 단체의 학기 초 또는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외부인의 전도를 제재하겠다는 '전도 금지'여서 자칫 종교적 신념과 가치를 부정하는 오해를 사기에 충분했다.

더욱이 선거과정에서 그녀의 커밍아웃은 기독 교리와 상충하는 선거용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켰다는 시각에서 순수성을 잃게 됐다는 비판도 뒤따랐다.

그러나 학생자치활동에 꾸준히 매진해 온 그녀가 제시한 '면접시기 잡상인 제재', '포스터 노상 부착 금지' 등의 클린캠퍼스 공약은 대학가의 현실적인 질서 개선 방안으로 공감하게 된다. 평소 대학 캠퍼스에서 이단의 무분별한 전도활동에 대한 정통 교단의 대립과 제재가 기독 동아리를 중심으로 논의돼 왔기도 했다.

또 숭실대의 성소수자 동아리는 동성결혼 내용의 영화상영을 추진했으나 학교는 허가하지 않았다. 숭실대의 설립이념인 기독교 정신에 부합하지 않을뿐더러 사학의 설립 정신을 훼손할 수 없다는 취지다.

이반으로서 성소수자가 일반(一般)과 다른 점은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이다. 인간으로서의 희로애락은 다를 바 없다는 가설에서 평등하게 창조된 인간에 대해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성소수자였다고 한다. 인류문화를 빛낸 세익스피어, 버지니아 울프, 나이팅게일, 미셀 푸코, 차이코프스키, 바이론, 엘튼 존, 이브 생 로랑, 돌체, 보이 조지, 루즈벨트, 팀 쿡, 나브로틸로바 등 각 분야에서 현존하거나 작고한 스타들이 성소수자로서 활약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에이즈로부터 시작됐다. 에이즈의 발병은 타락한 성행위의 결과로 인식됐고, 동성애자들만 걸리는 질병으로 이해했다. 사실, 에이즈는 동성뿐만 아니라 이성 간에서도 전염되고 있다. 수혈과 분만, 모유 수유 등으로도 옮겨질 수 있다는 사실은 동성애자들에 대한 왜곡된 인권침해와 차별을 바로잡아야 하는 이유다.

성소수자가 나와 다른 것은 일반의 편견에서 오는 고통을 감내하는 일일 것이다. 종교적 신념이 가치 있다면 인간의 평등한 권리를 인정하는 사랑과 포용의 정신도 필요하다. 타락한 성적 일탈과 집착은 또 인간의 평등한 권리와 사랑으로 위장되지 않아야 한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 자기실현의 과제를 해결해 나가야 하는 가능성만으로 창조됐다. 누구에게나 방탕하지 않는 스스로 아름다움을 선택해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중요하다. 그래서 오늘도 거대한 벽과 싸우고 있을 나와 그들을 선과 악, 혹은 구원과 타락의 이분법으로 단죄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커밍아웃했다고? 서로 다른 차별이 아닌 다양성의 수용이 허용될 뿐이다.

▲ 인천일보, INCHEONILBO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