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김치 읽는 시간] 다양한 삶의 사랑·진정성 '김치'에 빗대 묘사 … 독자 입맛 유혹
▲ 김치 읽는 시간

'김치'를 주제로 한 소설집이 나왔다.

책 <김치 읽는 시간>은 매일 우리 식탁에 오르는 김치에 언어를 입혀 놓은 소설가 김진초의 다섯 번째 소설집이다.

작가는 김치와 관련된 온갖 에피소드를 소금에 절여 기억창고에 저장했다가 양념에 버무린 각양각색의 김치를 만들어 우리 앞에 내놓고 있다. 이 소설은 그 김치들의 아슴하거나 시끄러운 이바구들이다.

시퍼런 배추에 온갖 양념을 버무려 수십 종의 김치를 만들어내듯 어떤 소재나 상황에도 인물을 자연스럽게 얹어 가공하고 변모시키는 작가의 탁월한 솜씨가 소설을 맞춤하게 숙성된 김치 맛으로 읽히게 한다.

이 책은 한 그릇의 김치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서사의 포층에 배치하고, 그 과정에 얽히는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내면에 배어들고 있다. 그래서 서사의 전개과정에서 김치가 극적 모티프가 되기도 하고 또한 갈등해소 역할을 하기도 한다.

내시와 수양딸의 고단한 인생을 고수김치에 빗대어 쿰쿰한 맛으로 버무리고 있는 '내시김치', 인간에 대한 간단치 않은 통찰이 나박김치를 매개로 잘 전달된 '개년', 마라도에서 태어난 소녀와 백인남자의 이야기가 백김치와 같이 시원하고 새콤하며 아삭아삭하게 읽히는 '너의 영토',
일본인 할머니와 그 손녀의 질투를 동치미의 하얀 꼬리를 끌고 올라와 통통 터지는 꽃으로 비유한 '동치미꽃', 인도 카주라호의 카마수트라 108개의 성애 조각과 총각김치 이야기가 심장을 그득하게 죄어들게 만드는 '까막과부', 보쌈김치 속에 일제강점기와 독립운동사가 고스란히 들어 있는 '중국할머니', 노처녀의 맹목적인 사랑이 꽃을 틔운 부추꽃열무김치와 함께 쓸쓸하고도 아름답게 그려진 '꽃치미', 성미 급한 아버지와 딸의 갈등이 벼락김치와 조화를 이룬 '벼락김치', 강화출신 노총각과 무인카페 이혼녀의 사랑을 강화순무김치로 맛있게 빗어낸 '보라순무', 쌍둥이 형제의 애증을 국물 위에 건더기가 둥둥 떠 있는 둥둥이김치에 비유하고 있는 '둥둥이김치', 다섯 살 차이가 나는 고부간의 갈등을 쏘는 맛이 일품인 돌산갓김치로 익혀 놓은 '멍', 대장간에서 칼을 만드는 형제와 깍두기 사연을 선연하게 그린 '우울한 깍두기', 김장김치 도둑의 사연이 간간히 배어 있는 웃음과 함께 잘 버무려진 '도둑의 재발견' 등 소설집에 실린 13편의 작품에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그 진정성의 의미를 다양한 김치의 빛깔 속에 담아내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의 다양한 개인들의 삶에 육화된 김치세계 까지 보듬고 있어 이야기 자체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김치 읽는 시간>은 사람의 가치 상실과 인간관계의 갈등을 육화된 김치의 세계를 통해 현실적으로 처리하면서도 소설적 형상의 품위를 잘 살려내고 있다는 평이다.

개인의 일상에 가려진 비범함을 보여주기보다는 인생의 평범한 세부를 복원하여 밑바닥을 통해서만 건드릴 수 있는 고통의 본질을 환기시키고 있기도 하다.

출판사 관계자는 "살아있는 언어나 장치를 통해 체면과 염치가 걷힌 맨 얼굴이 바닥에서 툭 치고 올라오는 순간들이 매력으로 읽히는 소설"이라며 "김치로 시작해 김치로 끝나는 이 소설을 읽고 나면 독자들은 김치가 당겨주는 입맛에 대책 없이 몸이 끌려 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초, 도화, 444쪽, 1만5000원


/김진국 기자 freebird@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