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는 지금쯤?(5)

 정남숙은 구멍탄 더미 밑에 얼굴을 숨기고 울었던 흔적을 지우며 아파트 나들문을 열었다.

 언제 일어났는지 곽병룡(郭炳龍) 상좌가 단복(체육복) 차림에다 오리털 파커를 걸치고 발목까지 올라오는 운동화를 꿰어 신고 있었다.

 『오늘 아침 청소 나가는 날이야요?』

 곽병룡 상좌가 구부린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니는 얼른 들어가 내민대에 세워둔 빗자루를 들고 나왔다. 신발을 다 신은 곽병룡 상좌가 빗자루를 받으며 하품을 했다.

 『오늘, 시간 봐서 어머님을 병원으로 좀 모셔다 주셔야겠어요.』

 『와, 기래?』

 『기침 소리가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요.』

 『오늘 바빠서 안되겠어. 회의만 세 군데 참석해야 돼.』

 『그럼 버스 타고 나갈 테니까 아침청소나 다녀 오시구래.』

 곽병룡 상좌는 현관 벽시계를 바라보며 나들문을 열었다. 정남숙은 입쌀 항아리를 열어 밥을 안쳤다. 기침하는 시어머니를 위해 명태국이라도 좀 끓여야겠다고 생각하며 찬장 위에 얹어놓은 종이상자를 내렸다. 4ㆍ15(김일성 생일)때 받은 마른명태 한 상자가 그대로 있었다.

 명태 두 마리를 끄집어내 방망이로 통통 두들기고 있는데 막내 인화가 아랫배를 싸안으며 현관으로 나왔다.

 『와 기러내?』

 『배가 아파.』

 인화는 현관 옷걸이에 걸어놓은 톱바를 걸치며 뒤가 마려운 시늉을 했다. 정남숙은 두루마리 화장지를 한 움큼 찢어주며 소리없이 웃었다.

 『어젯밤 이불 차댕기고 잤구나?』

 『몰라.』

 『어서 위생실(화장실) 다녀와서 보위사업 좀 하려무나.』

 인화는 대답도 않고 나들문을 열었다. 밖은 그새 훤히 밝아 있었다. 인화는 아파트 통로 입구에 있는 위생실로 가기 위해 외랑식 통로 끄트머리에 있는 층계참으로 뛰어갔다. 인민반장이 아침청소를 나온 세대주들과 아파트 앞마당을 쓸고 있는 모습이 보였고, 10여 가구당 1개소씩 설치되어 있는 위생실 앞엔 사람들이 길다랗게 줄을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인화는 급히 아파트 층계를 내려가다 2층 층계참에서 우뚝 섰다.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려오면서 금시 물똥이 쏟아질 것 같은 느낌인데, 저렇게 길게 줄을 선 꽁무니에 서서 자기 순서를 기다릴 것을 생각하니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녀는 자기 순서가 되기 전에 속빤쯔에 똥을 싸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다시 아파트 계단을 올라왔다. 집으로 달려가 죽는다고 아우성을 치면 할머니가 아파트 내민대(베란다)에서 똥을 누라면서 할머니 방에 있는 요강을 내어주실 것 같았다. 그녀는 부리나케 4층으로 뛰어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