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현의 사진, 시간을 깨우다] (38) 귀한 수돗물로 농사지은 이야기
[유동현의 사진, 시간을 깨우다] (38) 귀한 수돗물로 농사지은 이야기
  • 김진국
  • 승인 2015.06.22 00:06
  • 수정 2015.06.21 2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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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용수 지원 구슬땀 … '가뭄 속앓이' 주민 시름 덜어주다
단수·우물 바닥 현상에 미군 급수차 동원 … '식수난' 해결
김포정수장, 부천 성지동 마을 농사·서울 강서 공급 도움
▲ 1965년 늦봄, 가뭄으로 식수난을 겪자 인천에 주둔한 미군이 급수차를 지원했다.

현재 인천시의 급수 보급율은 98.4%이며 1인 1일 급수량은 332ℓ이다. 가뭄이 오래되면서 급수난의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수도 시설이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 대다수 주민들은 우물이나 공동수도에 의존해 식수를 해결했다. 수도가 있더라도 고지대나 변두리 관말(管末)지역은 여름철만 되면 수압이 낮아져 항상 물 기근 소동이 벌어지곤 했다.

낮은 수압 때문에 수도국이 신규 수도전 설치를 허가해 주지 않으면 밤을 이용해 몰래 남의 수도관에서 물을 대는 공사를 하는 부정 수도사업자들이 활개를 쳤다.

가뭄이 오래되면 인천시는 하절기 비상급수대책을 세우고 물을 많이 사용하는 목욕탕이나 수영장의 영업을 금지시켰다.

사진은 1965년 늦봄, 가뭄이 계속되면서 수돗물이 단수되고 우물이 완전히 말라버리자 인천에 주둔한 미군부대의 급수차까지 동원한 모습이다.

어른은 물론 아이들도 '초롱'이라고 불렸던 함석 물통을 급수차 앞에 길게 내놓았다. 언제 다시 급수차가 올지 몰라 온 식구가 다 동원되었다. 혹시 내 앞에서 물이 똑 떨어질까 봐 그들은 조바심으로 물줄기를 바라보고 있다.

늘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인천 수돗물로 한동안 서울 사람들의 목을 축여 주었던 적이 있다. 화곡동, 신정동, 방화동 등 지금의 서울 강서구 지역은 1967년 신시가지로 개발되었다.

그런데 상수도 시설을 제때 갖추지 못해 10여년 동안 거주 주민 절반 정도인 10만명은 인천시 북구수도관리사업소가 관리하는 김포정수장(신월동 산 68)에서 공급하는 물을 먹어야만 했다.

물 값은 인천시 급수조례에 따라 서울시 수도료보다 20% 가량 비쌌다. 주민들은 서울 시민이면서도 인천시 마크가 찍힌 비싼 고지서를 받았다. 그것도 감지덕지하게 받아야만 했다.

김포정수장에서 생산되는 11만t 중 7만t은 인천으로 가고 나머지 4만t만 강서구로 보내졌기 때문이다. 수압이 낮아지거나 단수가 돼 주민들이 영등포구청(후에 강서구청)에 신고하면 인천시 수도국으로 알아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수도(首都) 서울이 한동안 인천시 수도(水道) 행정을 눈치 봐야만 했다.

1978년 5월17일 하오 3시 김포정수장에서 원병의 인천시장은 구자춘 서울시장과 김포정수장의 토지와 건물 등 관련 시설을 18억4천867만원을 받고 양도하는 '상수도이관협정'을 체결했다.

이듬해부터 강서구 주민들은 비로소 서울 물을 먹게 되었다.  귀한 인천 수돗물로 타 지역에서 농사를 지었던 황당한 이야기도 있다.

경기도 부천시 성지동 30여가구는 한동안 인천 수돗물로 2만여평의 논을 농사지었다. 1966년 경인고속도로 공사로 인해 마을 저수지가 메워지면서 그들은 농업용수를 잃었다. 논농사를 포기할 만 했지만 그들에게는 또 다른 물이 있었다.

김포정수장에서 인천으로 가는 송수관에서 새나오는 물이 들판으로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일제 말 1944년에 설치된 이 송수관은 10여년 전부터 곳곳에서 새나오기 시작했다.

인천시 수도국은 정기적으로 현장에 나와 벌어진 틈을 콘크리트로 때우거나 구멍을 말뚝으로 막아놓았지만 높은 수압을 이겨 내지 못해 물이 새나갔다.

아예 농민들은 말뚝을 뺐다 닫았다하면서 마치 수도꼭지 틀듯 자유자재로 논물을 댔다. 심한 가뭄으로 이웃 마을들이 모내기를 못할 때도 저수지도 없는 이 마을은 물 걱정 없이 모내기를 끝내곤 했다. 물이 콸콸 솟는 곳은 물웅덩이 까지 생겨 마을 아이들이 물놀이를 할 정도였다.

1977년 당시 김포정수장이 송수관을 통해 인천으로 보내는 물은 하루 5만t. 당시 흄관의 평균 누수율은 30% 선으로 5만t 중 1만5000t은 땅 속으로 스며들었다. 이것은 7만명 인천 시민의 갈증을 풀어줄 수 있는 엄청난 수량이었다.

매년 식수난으로 인천시민의 수도꼭지는 말라붙었지만 부천 성지동 마을 농부들은 십 수년 간 인천 수돗물로 일군 옥답에서 흥겨운 풍년가를 불렀다.


/유동현 인천시 '굿모닝인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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