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위선

미국 스탠퍼드 교수 '지식 추구 훼손' 날카롭게 비판 … 희망적 대안 제시도

진리의 상아탑이라는 대학,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대학은 어느 덧 취업사관학교가 된 지 오래다.

지난 1989년 대학등록금자율화 조치 이후 대학등록금은 기하급수적으로 오르기 시작했고 교육의 공공성은 무참히 짓밟혔다. 고등교육기관의 90%가 사립학교인 현실에서 교육의 공공성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우습긴 하다.

과거 교육은 가장 빠른 계층이동 사다리였지만 현재 한국사회 현실에서 교육, 특히 대학교육은 계층이동 사다리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다.

특히 IMF 경제위기 이후 기업들은 신규채용에 소극적이었고 그 수단으로 각종 자격증과 영어성적 등을 요구하며 진입장벽을 높였다.

정부는 청년실업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시켰고 이는 결국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낳고 있다.

대학들 역시 기업이 필요로 하는 신입직원을 공급하기 위해 '진리 추구'라는 본질적 가치는 뒤로 한 채 '취업률'만은 우선시하는 학사제도 개편을 단행했다. 그 결과 대학들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기 위한 조건으로 영어공인시험 성적이 요구하는 해괴한 상황까지 연출하고 있다.

그런데 대학의 위기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최상위 대학 10개 가운데 7개를 보유한 '대학 강국' 미국에서도 대학 본래 기능이 파괴되고 있다고 미국 스탠퍼드 법대 교수인 데버러 로드는 고발한다.

그는 <대학의 위선>을 통해 오늘날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연구 중심 대학'이란 말은 스스로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책에서 대학교수들의 '지위의 추구'가 어떻게 '지식의 추구'를 훼손하는지 고발한다.

수상을 하거나 강연자로 초대되는 것, 주요 학술지에 글을 싣는 것, 학자나 미디어 평론가 들이 자신의 글이나 말을 인용하는 것 등은 대학교수들에게 성공의 징표가 되며 이는 곧 지위 상승으로 이어진다고 꼬집는다.

'가르치는 것'이 본질인 '교수'가 유명 학술지에 실릴 논문을 쓰기 위해 본연의 임무를 소홀히하고 학생들은 전임교수 대신 투입된 대학원생이나 외부 강사한테서 수업을 듣는다. 교수와의 지적인 대화를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원천봉쇄된 것이다.

이 같은 교수들의 '외도'는 대학의 순위 경쟁과도 연관이 있다. 어느 덧 인지도가 대학의 존폐를 결정하는 요인이 된 지 오래다.

데버러 로드 교수가 지적하는 미국 대학의 문제가 전혀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한국의 대학 제도나 구조가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다.

미국 대학의 핵심 요직을 두루 거친 저자의 날카로운 비판은 특히 내부자 시각에서 문제를 직시했기에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물론 비판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저자는 오랫동안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에 대해 각 장마다 희망적인 대안도 내놓는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저작권법 위반이나 표절 같은 윤리 문제와 관련해 교수와 학생들의 책임감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과 교수 및 시간강사에 대한 적절한 보상 체계를 정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대학 당국과 대학에 몸담은 교수들이 공교육을 이끄는 주체로서 더 큰 책임감을 가지고 '지식의 추구'라는 대학의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상우 기자 theexodus@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