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세없는 복지 vs 복지위한 증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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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문화 2015년 여름호 특집 '세금 공부 합시다'
한국 조세 정책 과제 진단 … 부자·법인 증세 강조'
권역별비례대표제·수도권매립지 쟁점글도 실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고 어느 덧 임기의 절반을 소화했다.

'증세 없는 복지'를 내세우고 '경제민주화'를 공약했지만 지난 2년 반의 시간동안 이뤄진 것은 없었다. 오히려 집권여당 원내대표가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단언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담뱃세 인상과 관련해 우회 증세라는 논란이 일었고 곧이어 연말정산 파동이 되풀이되며 '증세'에 대한 국민들의 민감도는 더욱 확장됐다.

그사이 중앙정부는 본인들이 생색내며 만든 보육정책인 누리과정(3~5세 보육정책) 예산을 국비없이 지방정부에만 떠넘겼고, 경상남도에서는 홍준표 도지사가 돈이 없다는 이유로 무상급식 중단을 선언, 아이들의 밥그릇을 빼앗았다.

현재 대한민국은 복지를 놓고 증세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증세 없는 복지는 집권여당 원내대표의 말 그대로 '허구'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금과 복지를 두고 결정적인 선택을 내려야 하는 지금 우리에게 이러한 논란이 더욱 필요하다.

한편으로는 주장의 전제를 드러내고 다른 한편으로는 주장의 오류를 찾으면서 동의할 수 있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나누다보면 바람직한 세금과 복지에 관한 합의도 한결 쉬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황해문화> 2015년 여름호 특집 '세금 공부 합시다'는 지난 2011년 봄에 특집으로 다뤘던 '복지국가, 제대로 논의하기'의 연장선일 수 밖에 없다.

2015년 여름호 특집의 첫 글 <세금의 원칙과 현실>에서 우명동 성신여대 교수는 18세기와 19세기 그리고 20세기에 각각 제시된 대표적 조세 원칙을 소개하고 그것들의 사회성과 역사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공통적 조세 원칙으로 명확성과 편의성을 꼽으면서 그것을 포괄하는 '민주성'을 내세운다. 조세에 관한 의사결정에 과정이 중요하다는 점은 필자는 강조하고 있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가 쓴 <우리나라 세금제도의 특징>이라는 주제의 글은 우리나라 조세정책의 과제를 진단했다.

강 교수는 우리나라 조세정책이 1960년대 이후 경제성장 전략의 일환으로 자본 형성과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유리한 방식으로 전개돼 낮은 조세부담률과 취약한 과세공평성 그리고 조세 및 공적이전지출의 낮은 재분배 기능이 두드러졌다고 진단했다. 조세정책을 통한 부의 분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만큼 공평과세와 조세정의가 필수 해결 과제라는 주장이다.

대부분의 조세 개혁은 증세를 포함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증세 정치는 필패'라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는 듯하다. 이 믿음을 강화하려는 이들은 종종 박정희 정부의 부가가치세와 노무현 정부의 종합부동산세를 언급하며 정치권이 '증세' 논의를 하는 것에 제동을 건다.

전강수 대구대 교수는 <세금의 기억>이란 글을 통해 이 두 사례를 들여다보면서 '증세의 저주'가 허구임을 밝힌다. 당시의 부가가치세는 기존의 간접세를 대체하는 것으로서 조세저항과는 거리가 멀며, 증세가 부마항쟁이나 10·26 사건의 주요 원인일 리 없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종합부동산세는 보유세를 강화하고 시가상응과세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필자가 지적하듯이 여론의 지지율도 매우 높았다. 그리하여 경험으로부터 깨우친다면, 피해야 할 것은 증세가 아니라 '꼼수 증세'이고, 증세에서 중요한 것은 순서다.

이태수 꽃동네대학교 교수는 복지국가로 가기 위해서는 증세가 필연적이지만 부자 증세를 통한 조세정의를 확립하는 것이 1차 전략이 돼야 하며, '보편적 증세'는 적절한 조건과 상황이 도래한 시점에서 선택할 2차 전략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세금과 복지 사이에서>라는 글을 통해 단기적으로는 부자 증세와 함께 조세감면제도를 정비하는 등의 방법으로 과세기반을 확충하고 토목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를 강화하는 등의 방법으로 재정지출구조를 바꾸기만 해도 우리가 실현해야 할 핵심 복지정책을 추진하는 데 필요한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추정한다.

특집은 김유찬 홍익대 교수의 글 <법인세 논쟁>으로 마무리된다.

과세 대상인 법인 이익의 성격에 관한 두 가지 견해가 있으나 필자는 법인세의 다른 측면을 주목한다. 법인세를 소득세의 원천징수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법인세율이 소득세율보다 훨씬 낮아 법인이 대주주의 조세도피처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문제를 제기한다.

대주주는 법인에 이익을 유보시키고 실질적 재산권을 행사하면서 부를 증식시키고 있다. 특히 대기업에 대한 감세는 필연적으로 그 뒤에 숨겨진 대주주의 세부담 감면 및 부의 축적으로 귀결되어 우리 사회에 치명적인 형평성의 문제를 야기한다. 바로 이것이 법인세 최고세율을 높여야 하는 첫째 이유다. 아울러 법인세가 노동자에게 전가되리라는 주장의 허구성을 밝히는 것도 이 글의 주요 내용이다.

<황해문화> 편집자문위원이자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인 김동춘 교수는 <'사회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라는 글을 통해 한국 자본주의는 세계적 신자유주의 질서를 따르고 있으나 과거 제국주의/식민지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서구가 주도한 냉전질서에 수동적으로 편입돼 국가가 기업의 자본축적 조력자 역할을 수행하는 '동아시아형 주변부 신자유주의'의 형태를 띠고 있다고 지적한다.

주변부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한국사회의 양극화와 불평등을 해소하려면 '21세기형 사회국가', 즉 국가가 정의의 원칙에 서서 시장의 통제자 역할을 하는 사회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사회국가 건설을 위해서는 이를 담당할 주체 형성이 필요함을 역설하며 글을 끝맺는다.

그밖에도 이번 호에는 지난 2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국회에 제출한 '정치관계법 개정의견'의 내용을 훑어보고 특히 논란이 된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의 의미와 한계를 짚어낸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이정진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연구관), 최근 서울·경기·인천을 둘러싸고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쓰레기 매립지 문제를 조목조목 짚어낸 <표류하는 수도권 매립지 논란>(조강희 인천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등의 글이 실려있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중요 쟁점의 핵심을 짚어주어 독자들에게 생각할 여지를 마련해준다.

황해문화 편집부 지음, 새얼문화재단, 404쪽, 9000원


/김상우 기자 theexodus@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