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재의 오월 이야기 '나는 아직도 아픕니다'

아직도 아물지않은 상처 '민주화운동' … 치유를 위한 그림책

광주항쟁이 어느 덧 35주년이다. 지금 어린 세대들은 광주를 어떻게 알고 기억하고 있을까? 또 우리의 다음 세대들은 광주를 어떻게 기억할까?

광주의 오월, 오월의 광주는 정치적 성향이 어떻든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다. 그 상처는 종종 무지와 몰이해의 손톱에 긁혀 극심한 통증을 일으키곤 한다. 무지와 몰이해의 극단에는 이른바 '일베' 류의 조롱과 모독이 있다. 이는 상처를 제대로 치료하지 못한 까닭일 것이다.

책 속 주인공 '아재'는 오월의 폭력에 친구들을 잃고 형제를 잃었다. 저수지에서 물놀이를 하던 중 느닷없이 쏟아진 총성, 날아온 총탄에 친구들이 피 흘리며 쓰러졌다. 선연히 번져오는 핏물, 훅 끼쳐오는 피비린내, 친구가 생전 처음 얻어 신었다는 하얀 운동화에 죽음의 증거처럼 점점이 박힌 핏방울들…. 사랑하는 사람들을 처참한 주검으로 만난 그 고통의 순간을 어떻게 지울 수 있었을까.

책을 쓴 최유정 작가는 몇 해 전, 광주트라우마센터에서 하얀 운동화를 끌어안고 하염없이 우는 늙은 사내를 만났다고 한다. 80년 5월에 시위를 하다가 붙잡혀 수년간 감옥살이를 한 그는, 잡혀갈 때 신었던 피범벅 운동화가 떠올라 그 뒤로 하얀 운동화를 도저히 신을 수 없었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몇 달간의 치유 끝에 30년 만에 처음으로 자기 이야기를 원 없이 털어놓았고, 그제야 끌어안고 있던 하얀 운동화를 조심스레 신기 시작했다. 그 오월에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으며 사람들이 자기를 손가락질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이젠 어깨를 쫙 펴고 외출도 할 것이라고 슬프디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고 한다.

80년 당시에 이 이야기의 배경 사건인 '송암동 학살'의 피해자 고 방광범 군과 똑같이 중학교 1학년이었던 광주 출신의 작가는 그 늙은 사내를 만난 뒤에야, 그 동안 잊은 듯 무덤덤했던 '그해 오월'이, 잊은 것이 아니라 애써 외면해 온 것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러나 하얀 운동화의 늙은 사내를 만난 뒤, 공포와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이, 기억을 다시 이야기하는 것이, 공포를 이기고 기억을 의미 있게 하는 길임을 깨달았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깨달음을 작가로서 세상과 나누기 위해, 다음 세대에게 들려주기 위해 이 이야기를 썼다. 그리고 그의 글에 화가 이홍원이 그림을 그렸다.

아직도 바람 끝이 매운 시절이다. 여전히 오월을 묻어 버리려 하는 사람들이 있다. 광주를 잊으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 땅에는 여전히 하얀 운동화의 늙은 사내들이 살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월을 기억해야 한다. 광주를 이야기해야 한다.

오월 광주를 기억하고 이야기하는 이 책이 그런 조그만 계기를 만들고 우리 다음 세대에게 다시금 아픈 역사를 반복되도록 만들지 않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최유정 지음, 이홍원 그림, 평화를품은책, 56쪽, 1만9800원


/김상우 기자 theexodus@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