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할만한 시선] - 한국사 100년의 기억을 찾아 일본을 걷다
다큐멘터리 사진가의 15년간 기록 … 일본 노역현장 곳곳 답사
올해는 을사늑약으로부터 110년이 되는 해이자 경술국치로부터 105년, 광복 70년이 되는 해다. 하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 유령처럼 우리 곁을 떠도는 식민지의 잔영과 일제강점기 시절의 잔재는 아직까지 우리 곁에 남아있다.

<한국사 100년의 기억을 찾아 일본을 걷다>는 다큐멘터리 사진가 이재갑이 일제강점기 시절 식민지 조국의 아픔을 안은 채 머나먼 타국의 땅으로 강제노역으로 끌려갔던 옛 선조들의 아픔을 지난 1996년부터 15년 동안 추적한 보고서다.

그는 후쿠오카와 나가사키, 히로시마, 오사카, 오키나와를 중심으로 일본 열도 곳곳을 답사했다. 군부대 진지에서부터 탄광, 광업소, 댐, 해저탄광, 지하 터널, 비행장, 통신 시설 등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한이 서린 역사의 흔적에 분연히 뛰어들며 참혹했던 모습의 현재 모습을 담아냈다.

장장 15년이 넘는 치열한 집필 기간 동안 작가를 독려해 온 것은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조선인들의 흔적을 찾는 작업이 결코 과거를 어루만지는 일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믿음뿐이었다. 그가 서두에 밝힌 것처럼 "역사를 어떤 방식으로 재해석하느냐에 따라 현재와 미래는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오늘 강제징용의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철도 침목 하나가 조선인 한 명
일제강점기 시절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운항했던 연락선을 타고 현해탄을 건넜던 조선인들은 일본인 관리자의 폭언과 폭력에 맞닥뜨렸다. 강제 동원으로 끌려간 일본 열도 곳곳에서 감시와 차별,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사망한 사람들도 많았다.

후쿠오카 지역 41개 광업소에 배치돼 강제 노역에 시달린 사람만 해도 약 11만명이다. 재일사학자인 박경식 선생이 그동안 발굴했던 자료에 따르면 1939년부터 1945년에만 약 100만명이 넘는 우리 동포를 강제 연행했고, 군속으로 37만명을 전선에 동원했다는 사실이 책을 통해 드러난다.

일본 총리를 지냈던 '아소 다로' 가문이 관리했던 아소 탄광은 조선인 징용자에 대한 노동 착취가 가장 심했던 곳이기도 하다. 약 1만명 중 절반은 굶주림과 중노동을 이기지 못해 숨지거나 탈출을 감행했다. 일본인 현장 감독은 수시로 노동자들을 폭행했는데, 이런 폭행은 석탄을 캐는 일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다. 도망치는 사람이 많아지자 각 지역별로 감시초소가 생겨났고 이렇게 붙잡혀 오면 모진 고문을 당했다.

조선인 강제징용과 관련된 진실을 밝히는 사업에 평생을 바친 재일 한국인 배동록 씨는 이렇게 말하며 울분을 토했다. "일제강점기 재일 조선인의 삶은 한마디로 표현됩니다. 현재 일본 내에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는 '철도 침목 하나가 조선인 한 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할 정도다.

▲일본 땅 곳곳에 서린 조선인의 한
정든 고국과 산천, 부모와 처자를 떠나 이국땅에 끌려온 사람들은 결코 사람이 견딜 수 없는 열악한 작업 환경에 노출됐던 선조들. 저자는 후쿠오카 현의 미이케 탄광, 미쓰비시 나가사키 조선소, 사가 현의 이마리 가와나미 조선소, 오사카의 우토로 마을, 히로시마의 야스노 발전소, 오키나와의 도카시키 섬 등을 둘러보며 사진으로 기록한다. 과거 강제징용의 현장에서 당시의 아픔을 기억하는 재일동포 등을 만나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일본 최북단 훗카이도에서부터 최남단 오키나와까지 이 낯선 일본 땅에서 조선인의 피와 한이 서리지 않은 곳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을 전한다.

야마구치 현 우베 시에 있는 도모나미 마을 앞바다에 아직도 흉물스럽게 서 있는 탄광 구조물은 1942년 2월 해저 탄광 침수사고로 목숨을 잃은 134명 조선인의 혼을 고스란히 안은 상징이다. 당시 사고 은폐에 급급했던 일본은 안전상의 이유로 유해 발굴조차 허락하지 않고 있어 아직도 이들의 유해가 차가운 바닷물 속에 수장돼 있다.

나라를 빼앗기고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면서 죽음마저 강요당했던 조선인들은 지금도 땅속에 이름도 없이 묻혀 있다. 그들의 희생과 죽음은 정확히 매듭지어지지 않고 있다.

직접 보고 듣지 않고서는 결코 절절히 느낄 수 없는 조선인 강제 노역자들의 아픔. 식민지 조선에 일본이 자행한 가장 큰 만행 중 하나인 조선인 강제징용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 작업에 대한민국은 없다. 광복 70년을 맞았지만 아직까지도 제대로 된 친일파 청산은 되지 않고 있고, 오히려 친일파 후손들이 국가를 상대로 토지반환소송을 제기하는 현실이다. 일제강점기 나라를 팔아먹은 것이 자랑스럽다는 듯 외치고 있는 모습에서 과연 우리가 일제 잔재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지 되새기게 만든다.

이재갑 지음, 살림, 342쪽, 1만4800원

/김상우 기자 theexodus@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