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그것도 모르나?"

지난 16일 평소 알고 지내던 전직 해경 간부가 퉁명스러운 말투로 내뱉은 한마디였다. 국무총리실의 해경 해체안 검토를 민간인인 자신도 알고 있는데, 기자라는 사람이 왜 그것도 모르냐는 것이었다. 정말 몰랐기 때문에 "뭐라 할 말이 없다. 관련 자료가 있으면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세월호 침몰 사고 관련 총리실 주관 입법 동향'이란 제목의 문건을 입수했고, 인천일보는 정부가 해경 해체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을 전국 최초로 보도할 수 있었다.

취재를 시작할 즈음 문건은 이미 급속도로 퍼진 상태였다. 문건이 전직 해경 간부를 거쳐 기자에게 온 것만 봐도 알 만하다. 해경 해체안은 경찰과 검찰의 정보망에도 올라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쯤 되니 해경 해체안을 모르는 일은 기자뿐인 것 같았다.

본격적인 취재에 들어가자 해양경찰청은 문건 존재 자체를 모른다고 했다. 국무총리실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들 기관이 문건 자체를 덮으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도 들었다. 여하튼 기사는 나갔다. 무엇보다 문건의 내용이 '확실하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기사에 대한 반응은 청와대에서 가장 빨랐다. 지난 12일자 1면 톱으로 배치된 기사가 11일 과히 늦지 않은 밤 인천일보 홈페이지에 먼저 떴는데, 이를 본 청와대가 해경에 기사 내용에 대한 진상 규명을 지시한 것이다. 정부가 지방지 기사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청와대 지시를 받은 해경이 확인한 결과 문건 생산자는 아이러니하게도 해경이었다.

해경 내 어떤 순경이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해 유관 기관 입법 동향을 파악한 뒤 첩보 형식의 보고서를 내부 정보망에 띄운 것인데, 그것을 본 같은 경찰서 정보관이 국무총리실에서 만들어진 보고서인 것처럼 꾸며 주변인들에게 모바일 메신저로 전달한 것이다.

문건의 실체는 밝혀졌지만, 조직에 들어온 지 고작 2년된 말단 직원이 유관 기관 입법 동향을 거의 정확히 파악한 점은 미스터리로 남았다.

대통령의 해경 해체 선언과 해경 직원이 작성한 보고서의 해경 해체안은 사실상 궤를 같이 한다. 해경 수사와 정보 기능이 경찰청으로 넘어갔다는 내용은 완벽히 일치한다. 순경의 보고서가 정보관 손을 거쳐 국무총리실 문건으로 둔갑돼 국무총리실과 청와대에 흘러 들어가면서, 정부에 해경 해체라는 묘수를 제공한 것 아니냐는 뒷말도 나온다. 분명한 점은 해경의 하위직부터 수뇌부까지 조직의 안위를 걱정하다 해체라는 철퇴를 맞았다는 것이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전문성 결여와 무능의 민낯이 드러난 해경은 참회의 시간이 충분히 있었음에도 스스로 그 기회를 걷어차고 비난 여론을 자초하는 행태를 보였다. 해경이 이제 가야 할 길, 해야 할 일은 분명히 정해졌다. 국민의 원망과 질타를 뼛속 깊이 새기고, 국가안전처에서 새롭게 태어나 국민에게 인정을 받는 기관으로 거듭나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범준기자 parkbj2@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