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문화 20년 어제와 오늘
   
 


시사문화계간지 <황해문화>가 창간 20주년을 맞았다.

1993년 창간, 이번에 81호를 발간하면서 스무 살의 늠름한 청년으로 성장한 것이다.

<황해문화>는 그 동안 가장 지역적이면서도 가장 전국적인 이슈를 다루며 지역은 물론 전국잡지로서의 위상을 쌓아 왔다.

때로는 우리 사회의 아픈 곳을, 때로는 따스한 햇살이 드리워진 곳을 찾아가 사람사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황해문화> 81호의 내용을 펼쳐본다.



1993년 창간 … 20주년 기념 통권81 특집호 발간

노동자·문학가·종교인 등 46명 담은 민중자전

문민정권 이후 시대현장 민초의 삶 고스란히



▲황해문화 스무 살 늠름한 청년으로 성장

<황해문화> 통권 81호는 20주년 기념 특집호다.

'20년,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이란 제목의 단행본형 통기획으로 만들어졌다.

이번 기획은 통권 50호 '대한민국의 상처와 희망'이라는 제목으로 발행했던 지난 2006년 봄호에서 이미 시도된 바 있다.

<황해문화>는 이번 호를 통해 그동안 말하고 싶었으나 말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말을 가급적 많이 싣고자 노력했다.

특집호엔 <황해문화>가 창간된 1993년부터 올해 2013년까지 20년 동안 이 땅에 사는 마흔 여섯 사람의 살아온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공장노동자, 해고자, 농어민, 장애인, 탈북자, 화교, 이주자, 자이니치, 이민자가 있고, 인권운동가, 병역거부자, 빈민운동가의 모습이 보인다.

또 청소년운동가, 문화기획자, 노래운동가, 대안학교 교사, 페미니즘 운동가, 촛불소녀, 해직교사, 내부고발자, 지역운동가와 시인, 소설가, 평론가, 만화가, 사진가, 가수, 극작가, 서점주인, 출판인, 해직기자도 만난다.

나아가 목사, 신부, 승려 심지어 전직 대법관, 현직 레슬러의 이야기까지도 담겨 있다.

일종의 '집단적 민중자전'처럼 보인다.

편집진은 가급적 사회 각층의 목소리를 듣고자 했다.

개중에는 글 잘 쓰고 말 잘하는 지식인들도 들어 있지만 그들조차도 무슨 대단한 공적 발언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지난 20년을 돌이켜 술회함으로써 이 집단적 민중자전의 흐름 속에 합류하도록 했다.

수많은 사연들이, 수많은 말들이 지난 20년이라는 한국현대사의 한 토막 속에서 얽혀있고 또 말해지고 있는 이 한 권의 서사기획 속에서 독자들 역시 자연스럽게 자신의 지난 20년 세월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그것이 어떤 형상을 하든, 어떤 이미지로 다가오든 민중자전의 파노라마는 곧 우리 모두가 함께 겪어왔던 날 것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이번 기념호의 기획 '20년,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에는 지금 이처럼 어둡고 답답한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2013년을 맨몸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의 사람들의 모습이 날 것 그대로 재현돼 있다.

'벌거벗겨진 삶', '추방당한 사람들', '이 땅에 살기 위하여',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등 네 개의 제목으로 구성됐다.

 

   
▲ 황해문화 창간 20주년을 맞아 전성원(왼쪽부터) 편집장, 장수영 편집자, 이희환 편집위원·박사, 김명인 편집주간, 지용택 발행인(새얼문화재단 이사장·문학평론가·인하대 교수), 김진방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이광일 정치학 박사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제공=새얼문화재단


▲황해문화의 탄생, 그리고 그 후 20년의 세월

<황해문화>가 창간된 1993년은 한국사회가 1961년부터 시작된 무려 32년의 군정체제를 끝내고 어렵사리 문민정권을 탄생시킨 원년이었다.

그 후 20년 동안 김영삼 정권 5년을 거쳐 김대중과 노무현의 '민주정권'이 이어졌고 이명박 정권을 거쳐 이제 박근혜 정권 원년을 맞았다.

그 20년은 우리에게 어떤 것이었을까? 벌써 몇 해 전의 이야기가 되었지만 그 시절을 일컬어 '87년 체제'라거니 '97년 체제'라거니 하는 논의들이 있었다.

'87년 체제'라는 명명에는 1987년의 6월항쟁과 그로부터 가능해진 직선제개헌을 비롯한 '민주(화)개혁'과 그로부터 비롯됐다고 판단되는 현재까지 한국사회의 질적 변화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97년 체제'라는 명명 속에는 1997년에 있었던 'IMF 쇼크'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적 '격변'으로 인한 부정적 구조변화야말로 1990년대 이후 한국사회의 대표 항수이며 '민주화'는 그에 비하면 일개 종속변수라는 입장이 들어 있었다.

쉽게 단순화할 수는 없겠지만 오늘의 시점에서 본다면 '97년 체제'라는 명명이 더 사태의 본질에 접근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1987년의 민주항쟁은 직선제 개헌을 낳았고 노태우-김영삼 정권 10년 동안의 산통을 거쳐 마침내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이른바 '민주정권 10년'을 일궈냈다.

그 민주화는 정권교체와 사회 전반의 민주적 환경 조성이라는 의미있는 결과로 나타났다.

그러나 국가보안법 폐지의 실패에서 나타나듯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에는 크게 못 미치는 것이었다.

전성원 편집장은 "무엇보다 그 뒤를 이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통해 그나마 이뤄졌던 민주화의 여러 성과들이 하나하나 무화되거나 격파되는 현실을 미루어볼 때 극단적으로 말하면 '87년 체제'는 일종의 환각이었다는 생각조차 든다"며 "더욱 비관적인 것은, 비록 신자유주의 체제가 멀게는 1980년대 초 전두환 정권 시절을 거쳐 노태우 정권 때부터 이미 세계화니 개혁 개방이니 하는 언술과 더불어 시작되긴 했지만 김영삼 정권하의 노동법 개악, 김대중 정권하의 금융개혁, 구조조정과 대량 해고, 비정규직 양산, 노무현 정권하의 FTA 드라이브와 시장자유주의 고착 등에서 보듯 이른바 민주정부아래서 한국사회에 확고하게 착근됐다는 사실"이라고 진단했다.

그 속에서 이 땅의 민초들은 어떻게 살아왔을까. <황해문화> 81호에서 만날 수 있다. 576쪽, 9000원





 

   
▲ 김명인 편집주간

■인터뷰 / 김명인 편집주간


"전국적 이슈 다루는 시사문화지 성장"


"블랙홀 같은 서울 중심의 구심력이 기세등등한 현실에서 인천이라는 주변적 로컬리티에 굴하지 않고 20년 동안 꾸준히 시사문화지로서 위상을 유지해온 것에 대해 약간의 자화자찬은 허락해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김명인(인하대 교수·사진) <황해문화> 편집주간은 창간 20주년 기념호를 내는 소감을 이렇게 표현했다.

"황해문화는 지역을 넘어 전국적 어젠다를 형성하고 확산시키는 시사문화계간지로 성장했습니다.

이는 새얼문화재단이라는 확고한 의지 자체에 스며 있는 높은 품격에서부터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라고 볼 수 있지요."

김 주간은 "잡지저널리즘의 쇠퇴하는 마당에 황해문화의 선전은 인천시민들의 손에 의해 40년 가까이 키워져온 풀뿌리 민간단체 새얼문화재단의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사랑받기를 원한다"고 희망했다.

"잡지는 경박단소의 매체문화와 단행본 중심의 출판문화 사이에서 시시각각 변화무쌍하게 등장하는 시사현상들을 보다 근본적인 맥락에서 차분히 짚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그 의미와 전망을 모색하는 진지한 논의의 장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는 "우리 사회에서 시사문제를 정통으로 다루는 잡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며 "그것은 비단 황해문화만이 아니라 진지한 잡지저널리즘 전체의 소망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한갓 1년에 네 번 나오는 잡지를 읽는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늘의 한국인들에게 이러한 차분한 성찰적 모색을 요구하는 것 또한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우회로를 기피하는 사회, 가던 걸음을 멈추고 다시 생각해 보는 일을 모두가 귀찮아하는 사회는 위험합니다."

김 주간은 "이성이 잠 들면 요괴가 눈뜬다"며 "그 요괴가 지금 한국사회를 백주에 횡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게 필자만의 착시는 아닐 것"이라고 단언했다.

"더 많은 분들이 황해문화를 읽어주시길 희망합니다. 그렇게 읽히는 잡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김진국기자 freebird@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