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나미
   
 


소설가 이나미(52)의 연작소설집.

물질로 자식 키우며 큰 욕심 없이 사는 해녀들의 땅끝섬이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서 관광객이 몰리고 외지인이 들어선다.

당연히 이전투구가 벌어지지만 척박한 환경에서도 나름의 질서와 인정을 갖추고 살아온 섬 주민들의 삶을 뒤집지는 못한다.

수압으로 인한 통증 때문에 진통제를 달고 살아온 두 섬 할머니가 술잔을 기울이며 민요 '이어도 사나'를 부르는 장면에 이르면 설움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물질하다 죽은 현씨 할망의 막내딸 당제를 위해 막순 할망이 색동 치마저고리를 짓는 밤에, 현씨 할망이 파전을 부쳐온다. 고맙고 서럽고 기막힌 심정이 '이어도 사나'에 얹혀 흘러나온다.

"성님, 우리 정희 이승에서 한 풀고 미련일랑 저 넓은 바당에 떨구고 홀가분히 갔겄주……?"

"기여, 그랬을 거영. 이 설운 세상 무슨 미련이 남았거시냐. 울지 마게. 눈물 흘리면 정희가 가다 돌아보느라 발부리 채어 못 가우다……"(123쪽)

작가는 "태생지인 섬에서 나고 자라 바다에 순응하며 모진 삶을 이어온 원주민들, 스스로를 유폐시키려고 찾아들었거나, 생존을 위해 먹고살려고 모여든 외지인들이 섬이라는 특수성, 폐쇄성 때문에 보이지 않는 창살에 갇힌 채 서로 부대끼며 갈등, 대립, 오해를 겪다 결국 사랑으로 구원을 모색하는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쓰고 싶었다"고 적었다.

자음과모음. 288쪽. 1만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