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택 선생님은 인구를 아주 잘 봤구먼. 그런 생각까지 갖고 있는 걸 보면 말이야?』

 정동준 계장이 아내를 보고 물었다.

 『우선 오기문 학생의 누나가 인구 삼촌을 좋아하는 눈치인 것 같아요. 그리고 오경택 선생님도 이북 사람들 생활력 강하고 고향도 같으니까 믿을 수 있다는 눈치 같아요….』

 『기문이 아버님이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형수님이 중간에서 저를 좀 도와 주십시오. 저도 방배동 전철역에서 전철 기다리다 기문이 누님과 두어 번 만나 자판기 커피를 빼 마시면서 한참씩 이야기하다 서로 갈 길이 달라 전송해 주면서 헤어진 적이 몇 번 있는데 그때마다 기문이 누님이 꼭 우리 오마니처럼 몸가짐도 다소곳하고 얼굴도 동글동글하니 예쁘게 보이던데요….』

 인구는 유난히 흥분하는 표정이었다. 송영주는 인구의 그런 모습이 심상찮게 느껴졌던지 그 다음날 답방 형식으로 오기문 학생의 집을 방문해 자기 남편도 인구가 대학만 졸업하며 직장을 알선해 내년 봄쯤 결혼시켜 분가시킬 계획이라고 법적 후견인의 복안을 내보였다. 일이 되려니까 그런지 송영주가 오기문 학생의 집을 다녀온 지 일주일만에 오기문 학생이 직접 집으로 찾아왔다. 다가오는 일요일은 오기문 학생의 아버지가 63세가 되는 생신 날인데 그 날 양가의 가족이 자기 집에서 저녁이나 한 끼 같이 먹으면 어떻겠느냐고 아버지가 여쭈어보고 오라고 해서 찾아왔다고 송영주를 찾아온 목적을 밝혔다. 송영주는 차를 한 잔 타서 오기문 학생을 대접하면서 곧장 정동준 계장의 직장으로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답변하면 좋겠느냐고 물으면서. 정동준 계장은 인구한테 별 연고가 없다면 자신은 좋다고 대답했다. 송영주는 남편의 복안을 파악하고는 앉은자리에서 『초빙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뜻을 오기문 학생 편에 전달하면서 인구에게는 그 날 시간을 내라고 미리 일러 놓았다. 인구도 좋은 듯 송영주의 당부에 별 토를 달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 이렇게 되어 두 가족은 오경택 씨의 63세 생일날 방배동 경남아파트에 함께 모여 저녁을 먹으면서 인구와 기영의 혼사 문제를 자연스럽게 거론하게 되었다. 그 날, 정동준 계장과 송영주는 인구가 진실로 기영씨(오기문 학생의 둘째 누나)를 좋아하고 있으면 자신들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두 사람의 결혼이 성사되게끔 돕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오경택씨 역시 오래 전부터 인구를 마음속으로 둘째 사윗감으로 정해놓고 있어서 그런지 법적 후견인인 정동준 계장 내외가 두 사람이 결혼하는 것을 수락만 한다면 딸은 자신이 나서서 설득시켜 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양가 혼주가 될 사람들의 뜻이 이러하다는 것을 신랑 신부가 될 장본인들은 미리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 인구와 기영은 어른들이 허락해주는 공간에서 아주 보라는 듯이 재회를 즐기며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고 있었다. 거기다 오기문 학생은 두 사람 사이에 끼어 교제를 도와 주는 역할을 했다. 그러니 두 사람의 관계가 밀접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