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본 어제와 오늘 … 듣는 재미 쏠쏠
훌륭한 업적·문화유산 보며 감탄하기도
   
▲ 신라의 고도인 경주 일대를 여행하는 새얼역사기행이 지난 5월22~24일 진행됐다. 동리목월기념관 아사달의 비 앞에서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새얼문화재단이 지난 5월22~24일 '제28회 새얼역사기행'으로 경주를 다녀왔다.

아이들이 바라보는 역사기행은 어떨까.

이번 새얼역사기행에 참가한 박세빈(인천 만월중 3년) 군의 기행문을 게재한다.


이문열의 고향을 가다

한달전 아빠께서 새얼문화재단에서 매년 있는 역사기행에 함께 갔다오자 하셨다.

초등학교때부터 매년 참여했었는데 2년간 외국 어학연수와 학업 때문에 2년간 참석을 못했다.

설레는 마음 때문인지 밤잠을 설쳤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씻고 간단히 밥을 먹고 집합장소인 정석빌딩 주차장에 7시에 도착했다.

처음 간 곳은 이문열 선생님의 고양인 두들마을. 차에서 내려 곧바로 지용택 새얼문화재단 이사장님 뒤를 따랐다.

다른 여행도 항상 즐겁지만 새얼역사기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우리가 배우는 교과서나 역사책 외에 알려지지 않은 재미있는 얘기들을 어르신들이 해주시기 때문이다.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다.

사실 그것에 대해 설명하는 글들이 있긴 하지만 나에게는 어렵고 이해가지 않는 글이 많다.

이문열 선생님의 고향인 두들마을은 이씨의 집성촌으로 2000년에 전통문화 마을로 지정됐다.

또 2001년에는 광산문학연구소를 건립하고 개소식을 가졌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많은 고택들과 문화재가 많았다.

최근에는 도서관도 지으셨다.

 

   
▲ 봉감모전 5층석탑.


최초의 한글 요리 비법서

두들마을을 돌아보고 두들마을 안에 있는 음식디미방 체험관으로 갔다.

음식디미방은 음식의 맛을 아는 방법이라는 뜻으로 지금부터 약 340년전에 쓰여진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조리서라 한다.

아시아를 통틀어 가장 오래된 조리비법서라고도 한다.

장계향 선생님이 자손들을 위해 일흔이 넘어서 지은 조리서라 하니 정말 대단하신 분이시다.

음식들을 보니 예뻤다.

하지만 평소에 살짝 짜게 먹고 맵게 먹어서인지 음식이 싱거워 보였다.

그래도 싱겁게 먹는 것이 짜게 먹는 것 보다는 건강에 좋을것 같아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맛있게 먹었다.

실제로 장계향 선생께서도 80세를 넘게 사셨다고 하니 싱거운 음식의 힘인가 싶어 놀라웠다.


석탑 건축기술에 새삼 감탄

점심을 먹고 2번째로 들린 봉감모전 5층석탑에 왔다.

봉감모전 5층석탑은 돌을 다듬어 벽돌모양으로 쌓아 올려 1단의 기단위에 5층의 탑신을 올린 것이다.

이 석탑의 기단이 약간이라도 기울어져 있다면 쓰러졌을텐데 아직까지도 이렇게 남아있는 것을 보니 그 당시 우리 조상님들의 건축기술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멋있어 보이는 조지훈의 시

첫째날 우리가 마지막으로 간 곳은 지훈문학관이다.

지훈문학관에는 청록파 시인인 조지훈선생님의 일생과 작품들에 대해 잘 나와 있었다.

조지훈선생님의 시를 보았는데 학교에서 보던 시와 달리 굉장히 멋있어 보였다.

어려웠던 시대적 환경에서 당당하고 아름다운 많은 시를 써서 그 시대때 힘들었던 국민들에게 많을 힘을 주고 정직하고 근면하면서 소탈한 현대의 선비였다고 한다.

시를 이해하기엔 어렵지만 승무라는 시의 첫구절이 나는 좋다.


착한 사람만 보인다는 불상 보여

둘째 날, 아침에 일어나서 짐을 챙기고 아빠와 아침밥을 먹으러 갔는데 황태해장국이 나왔다.

어제 술을 드신 분들을 위한 아침 같았다.

아빠도 매우 만족해 하셨다.

차를 타러 가는 길에 나에게 많은 분들이 "잘 잤어? 밥은 먹었니? 학교생활은 어때?" 라고 안부를 물어봐주셔서 기분이 좋았다.

밥을 먹은 뒤 불영사로 향했다.
 

   
▲ 지훈문학관 외부 전경.


불영사는 1000년의 세월이 넘는 문화재가 있는 곳이다.

불영사에 계신 여몽스님이 말씀하신 것을 들으니 숙종 때 인현왕후는 궁 밖으로 쫓겨난 뒤 왕족과 서민의 삶이 달라 고달프고 비극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다 인현왕후가 목숨을 스스로 끊으려고 할 때 꿈에 불영사에 있는 스님이 나타나 "내일 좋은 일이 있을테니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선몽을 꿨다.

인현왕후가 그 이야기를 듣고 내일을 맞이하고 보니 정말로 궁궐로 다시 들어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궁궐로 들어가 안정이 된 후 불영사에 찾아가 보니 그때 꿈에서 뵌 분과 같아서 원당으로 불영사를 삼아서 인연을 맺었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불영사에 있는 연못을 보면 산위에 있는 바위가 연못에 비쳐 부처님이 보인다.

착한 사람만 보인다고 여몽스님이 말씀해주셨는데 나는 똑똑히 보였다.


용이 돼 나라를 지켰다는 문무왕

아름다웠던 불영사를 출발해 바닷가쪽에 도착했다.

이곳은 2년 전에 신라, 백제, 고구려 삼국시대를 테마로 아빠, 엄마, 동생이랑 가족 역사기행 때 왔던 문무대왕릉이 있는 곳이었다.

동해로 들어오는 왜구의 잦은 침략 때문에 신라로서는 매우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이때 문무왕은 내가 죽으면 화장을 해서 그것을 동해바다에 놓으면 바다와 신라를 오가며 내가 용이 되어 신라를 지켜주겠다고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 곳이 감은사이고 감은사까지 배수로를 만들어 용이 된 문무왕이 왕래할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견대는 아들 신문왕이 대왕암에 화장하고 난 다음에 여기서 보니 용이 진짜 나와서 본 곳이 이견대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정말 신기했다.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감은사지로 갔다.

감은사의 뜻은 대왕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의미에서 절 이름을 감은사로 정했다고 한다.

감은사 절터 아래에는 정말로 해룡이 된 문무왕이 이 바다에서 들어와 쉴 수 있도록 섬돌을 파고 동쪽으로 향하도록 구멍을 만들어놓았다.
 

   
▲ 지훈문학관 외부 전경.


정말 신기했다.

감은사지동서 삼층석탑은 돌을 깎아서 만든 최초의 석탑으로 이루어진 쌍탑식 가람이라고 한다.

어려운 말들이 많아 잘 모르겠지만 최초로 돌을 깎아서 만들었다고 하니 정말 놀라웠다.


박혁거세 태어난 곳 영화 같아

우리는 시간이 남아서 2군데를 더 들렀다 바로 대릉원과 나정으로 갔다.

대릉원은 무덤들이 있는 곳인데 무덤을 보고 "어느 여인의 가슴이 이렇게 더 아름다울 수 있냐"고 하셨다고 했다.

진짜 그래보였다.

그리고 나정은 박혁거세의 탄생과 죽음이 함께 관계되어 있는 장소라 한다.

우물이 있었는데 지금 봐서는 어느 곳에 있었는 지 알 수 없다.

앞쪽은 들판이고 바다쪽은 나무들이 많아서 멀리서 보면 영화속에 나오는 숲 같았다.


환상적 안압지 야경에 반해

저녁을 먹고 안압지 야경을 보러 갔다.

전에는 낮에만 와서 안압지를 둘러 보았는데 그때도 아름다웠다.

그런데 밤에 아름다운 조명에 비춰진 누각과 정자의 그림자가 연못에 비쳐 또하나에 누각과 정자가 생겨나 있는 모습은 말로 표현 할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안압지는 당시 귀족들의 풍류를 보여주는 유물들이 많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14면체로 된 주사위에는 술에 관한 벌칙이 적혀 있다고 하는데 그중에는 '러브샷'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온화하게 생긴 석굴암 부처님

마지막날인 셋째날 새벽 3시에 아빠가 깨워주셨다.

나와 아빠는 씻고 해돋이를 보기 위해 나왔다.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나왔는데 새벽이라 그런지 많이 추웠다.

원래는 석굴암 근처에 들어가서 해돋이를 보려 했지만 스님들께서 예불을 드리고 있어서 못들어갔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주차장에서 일출을 봤는데 정말 예뻤다.

아침을 먹고 다시 석굴암으로 갔는데 어린아이들이 많았다.

나는 석굴암을 세번째 가봤다.

그런데 다른 부처님상을 보면 무서웠는데 석굴암에 계신 부처님은 웅장하고 온화하게 생기셨다.

지용택 이사장님께서 다른 부처님상 보다 젊고 온화하게 생기셨다고 여러 차례 말씀하셔서 아빠와 나는 다시 석굴암에 계신 부처님을 다시 뵙고 나왔다.

그리고 길가에 있는 비석에는 '영국인은 인도를 잃어버릴지언정 셰익스피어를 버리지 못 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귀중한 보물은 이 석굴암의 불상이다'라고 써 있었다.

그만큼 석굴암은 우리나라의 보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석굴암은 우리나라 사람의 대단한 기술을 볼 수 있는 보물이자 자랑인 것 같다.

아빠는 제일 자랑스럽게 생각 하시는 게 이순신 장군, 한글, 석굴암이라고 하신다.

 

   
▲ 지용택 새얼문화재단 이사장이 석굴암 앞에서 부처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처음 만난 청록파 시인의 삶

두번째로 동리목월기념관에 왔다.

내가 처음 들어본 시인들이다.

청록파 시인들이라 한다.

첫날 봤던 조지훈선생님과 함께 글을 쓰셨던 청록파 시인들이라 한다.

지훈문학관과 마찬가지로 동리목월기념관도 그분들의 일생이 있는 곳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직 생소한 분들이라서 잘 이해가 안 갔다.

그분들 중에 어릴적 많이 부르던 동요인 송아지를 박목월이라는 분이 지으셨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유네스코 지정' 대표 사찰

동리목월기년관을 나와 우리는 단체 사진을 찍고 가까운 불국사로 갔다.

여기도 세번째로 온곳이다.

학교에서도 오고 가족이랑도 오고 이번에 역사기행을 통해 와서 세번째다.

불국사는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사찰이다.

또한 유네스코가 지정한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불국사는 석가탑과 다보탑을 비롯한 수많은 국보문화재가 있다.

불국사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특히 사진을 많이 찍었다.


전쟁으로 잃은 유산 안타까워

네번째로 간곳은 분황사지였다.

분황사지도 벽돌이 아니라 돌로 지었다 한다.

왜냐하면 그때는 벽돌을 만들수 있는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쟁으로 인해 상륜부가 없어서 그런지 많이 허전해 보였다.

지용택 이사장님께서는 임진왜란과 6·25를 겪으면서 많은 유산들을 잃었다고 말씀하셨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 참가자들이 문무대왕릉을 바라보고 있다. 바다의 빛깔이 눈부시다.


첨성대 지은 장소 이해 안돼

마지막으로 간곳은 첨성대였다.

첨성대가 살짝 기울어져 있었다.

차들이 옆으로 다니면서 한쪽으로 기울어져 복원을 했다고 한다.

별자리를 보는 곳이라고 하는데 이곳에 만든 이유를 잘 모르겠다.

내 생각엔 산꼭대기에서 관측했으면 더 잘 보였을 것 같은데….


특허 받은 '황남빵' 맛보다

날씨는 점점 더 더워졌다.

돌아오는 길에 황남빵에 들려서 빵을 샀다.

이빵은 특허를 받아 이집에서만 판다고 한다.

팥으로 떡과 빵을 빚어 먹던 것을 자신만의 비법으로 황남빵을 탄생시킨 것이라 한다.

마지막으로 배리삼존불을 보았는데 왼쪽에 있는 보살님이 정말 섬세하고 아름다우셨다.

배리삼존불은 땅에 있던 걸 발견한 것이라 한다.

이곳을 마지막으로 보고 인천으로 올라 왔다.


세계에 나라 알릴 사람 되고파

다른때와 달리 이번 역사기행은 너무 빨리 시간이 지나갔다.

내년에 고등학교에 들어가 학업 때문에 마지막 역사기행이라고 아빠가 말씀하셔서 그런지 너무 아쉽다.

우리 조상님들의 우수하고 훌륭한 업적과 유물을 우리에게 물려주신것에 대해 정말 감사하다.

필리핀에 어학 연수를 갔을때 그곳 사람들이 한국 사람을 좋아하고 우리나라를 위대하게 생각했는데 이번 여행에서 보아온 우수한 역사를 그들에게 보여 줬다면 더더욱 우리나라를 위대하게 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든다.
 

   
▲ 안압지의 야경 /박세빈(인천 만월중 3년)


나도 우리 조상님들처럼 멋있는 한국의 한사람으로서 공부도 열심히 해서 세계에 우리나라를 알릴수 있도록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여행 중 이뻐해주셨던 할아버지, 할머니, 아저씨 아주머니, 새얼문화재단의 형, 누나들께 감사하고 많이 그리워질 것 같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도 아빠께 졸라 봐야겠다. ㅎㅎ.

이번 여행에는 틈틈이 설명해 주실 때 마다 휴대폰으로 녹음도 사진도 찍어 이해했는데, 많은 도움이 됐던것 같다.


/박세빈(인천 만월중 3년)·사진제공=새얼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