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아침 일찍 노동조합사무실에 들러 법원에 제출할 의견서를 작성하고 중간 중간에 수많은 전화 통화들을 주고받았다.

서류 복사와 복사기에 걸린 종이를 제거하기 위해 안달을 부리다가 끼니를 거른 것도 잊은 채 법원으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법원에서 냉랭한 말들을 듣고, 회사에 돌아와 지루한 협상을 벌이고, 동료들의 전화를 받고….

하루의 일을 마치 옥상 골방에 누워 잠시 달콤한 휴식을 가졌다.

그러면서 나는 짧게나마 노동에 대해 생각했다. 안면이 있는 사람이 노동조합으로부터 고초를 겪고 있다며 어떻게 대처해야 하냐며 하소연 하는 전화를 걸어 왔기 때문이다.

내가 그날 하루 노동조합일을 하느라 녹초가 되고 이 사회의 가진 자들에게 시달리며 파김치가 되었는데 노동조합으로부터 고초를 받으며 곤욕을 치르고 있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상담을 해줘야한다니 이 무슨 아이러니라는 말인가?

나는 현재 존재하고 있는 노동운동이 모두 완전하진 않다고 본다.

휴머니티와 인간에 대한 애정과 연민이 없는 노동운동은 허상일 뿐이기 때문에 우리의 노동운동은 아직은 결함을 가지고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노동자들이 기댈 곳은 노동자의 조직밖에는 없으며 내가 기댈 곳도 노동계급의 어깨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 또한 아이러니다.

난 인간애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데 내가 기댄 곳에서 인간애를 찾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노동의 현장은 전쟁터에 참전한 병사들의 살기등등한 눈빛과 돌격을 요구하는 피와 살이 튀는 살벌한 곳이다.

골방에 모로 누워 수많은 책들을 뒤적거리던 중에 이석행 전 민주노총 위원장의 노동에세이 <아주 평범한 노동자>(도서출판 북산)를 손에 잡은 것은 우연이었을까? 오늘은 바로 이 책을 소개한다.

이석행 위원장은 민주노총 위원장 시절인 2007년 3월 26일 '인천일보' 노동조합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당시 나는 노동조합 선전부장을 맡고 있었고 취재차 동행한 '매일노동뉴스' 기자가 대학 동아리 후배라 그때 일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 책을 보면 이석행 위원장은 "노동운동가로서 스스로의 마음가짐을 쇄신하기 위해, 그리고 현실의 노동운동이 처한 신뢰의 붕괴상황을 회복하기 위해" 무려 5개월간 '현장대장정'을 떠났다.

이석행 위원장은 인천 인근 송내역 인력시장과 인천일보 방문을 시작으로 인천, 대구, 경남, 충남 등 전국의 사업장 574곳을 방문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5만2000㎞를 여행했다.

지구 한 바퀴를 돌고도 남을 만한 거리였다.

그가 중국의 혁명가 마오쩌둥의 '대장정'에 비견될만한 '현장대장정'을 강행한 이유는 지도부-현장간부-현장조합원 사이의 신뢰와 결합력을 강화해 현장에서의 조직력을 회복해야 한다는 목표 때문이었다.

참고로 그가 민주노총을 이끌고 있을 당시에 우리 노동운동은 침체기를 겪고 있는 상황이었다.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정책(쉬운 말로 노동자를 마음대로 해고하고 고용을 보장하지 않아도 되는 정책)으로 비정규직과 정리해고자, 실업자가 늘고 있었며 노동계는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지금 나는 그 경중에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당시 이석행 위원장이 느꼈던 절실함을 느낀다.

이석행 위원장이 거시적 노동운동의 전체 틀에서 고뇌하고 있었다면, 나는 내 코앞에 닥친 암울한 현실에 대해 고뇌하고 있다. 내 노동은 인간의 존엄성은커녕 내 생존권조차 감당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대에, 아니 내게 과연 노동의 미래가 존재하는 걸까?

이석행 위원장은 "노동자가 스스로의 가치로부터 소외되지 않도록 주체성, 자발성을 가지고 사회와 대면하기" "고용불안, 생활불안에 시달리는 노동자를 위해 공공복지 혜택을 확대하기", "비정규, 이주 및 외국인, 여성 노동자 등의 존재로 연대를 확대하기"를 제안하며 노동의 미래를 이야기한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나는 아직 '노동의 미래'로 향하는 길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내겐 아직 영감이 부족하다.

그래서 이석행 위원장의 '현장대장정'이나 마오쩌둥의 '대장정', 체 게바라의 '라틴아메리카 모터사이클 대장정'같은 시간이 필요한 듯싶다.

그것이 소소한 여행이 되었던 불가의 만행처럼 자못 심각한 고행이 되었든 간에 말이다.

/조혁신 기자 mrpen68@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