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중심부에서 소외된 이들의 연약함·연민 그려내     

<잘가라 미소>(김정남·삶창)는 지난 2010년 첫 소설집 <숨결>을 펴냈던 평론가이자 소설가인 김정남의 두 번째 소설집이다.

2002년 <현대문학>에 평론이, 200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소설이 각각 당선되어 문단에 나온 작가 김정남은 이번 소설집을 통해 비정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욕망을 그려내고 있다.

'작가의 말'에서 드러나듯 작가의 생각은 분명하다. 무책임한 긍정은 도저한 허무보다 해로우며, 갈수록 뻔뻔해지는 세상에 맞서 자신의 글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는 것.

수록된 아홉 편의 작품들 속 세상은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에서처럼 안개가 잔뜩 낀 희뿌연 곳이다.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중략)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버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았다"는 바로 그 안개. 끝없이 이어진 길을 걸어가야 하는 사람들은 한 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세상에 한숨을 내쉰다. 이 세상은 대체 어떤 곳이란 말인가.

<잘가라 미소>는 허무의 포지션으로 자신들의 보호벽을 세운 사람들을 통해 괴물이 된 세상에서 괴물이 되기로 작정한 그들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사실 그들은 모두 피해자다.

이 세상, 자본주의라는 이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그들은 주변부 밖으로 밀려났거나, 점점 아래로 떨어져가는 사람들이다.

김정남의 소설들은 그들을 둘러싼 세상의 그 병적 징후를 읽어내며, 비극에 놓인 사람들에게 연민을 보낸다.

대책 없는 긍정이 아닌 허무를 지나고 나서야 얻게 된 그 귀한 연민. 그들은 아파하되 끝내 무너지지 않는다. 이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이 자신들에게 남은 운명인 것처럼. 절망도 희망도 쉽게 제시하지 않지만 그만큼 신중한 결말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잘가라 미소>가 지닌 고유의 미덕이다. 쉬운 희망은 그만큼 모래성처럼 쉽게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잘가라 미소> 속 인물들은 저마다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다.

비정한 세상은 그들에게 연민을 베풀지 않는다. '에움길'의 영웅은 대학 시절 사귀던 여자 친구와 만나지만, 그녀는 이미 룸살롱의 마담으로 전락한 신세다. 자신도 대리운전을 하며 가까스로 먹고사는 일을 해결한다.

'비정성시'의 여자는 남편을 잃고 퇴폐이발소에서 손님들에게 마사지와 자위를 대신 해결해주는 일을 한다. '봉인된 시간'의 부부는 경제난에 허덕이다 지방으로 내려가 살 집을 찾는다.

대부분의 인물들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회의 중심부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들. 대학 시간강사, 시간제 교사, 퇴폐이발소 직원 등등. 뿌연 세상 속 숨겨진 그들의 욕망은 다양한 형태로 그려진다.

때때로 그것은 여관방에서 포르노를 보는 남자의 모습으로, 퇴폐이발소에서 자신의 성기를 낯선 여성에게 맡기는 남자들의 모습으로, 거침없이 쏟아지는 욕의 향연으로 변주되기도 한다.

거친 '날것'의 묘사들은 불편하지만 분명 존재하는 세상의 어떤 부분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조혁신기자 mrpen68@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