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홍 인천대 교수, 노동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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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강한 자본으로 판사와 보안관마저 손아귀에 넣은 거대 목장주가 총잡이와 건달들을 고용해 열심히 황무지를 개간하며 살아가는 한 가족을 몰아내고, 자신의 목장을 넓혀가는 과정에서 정의의 총잡이가 나타나 악당을 물리친다. 이런 진부한 서부영화의 전형적 장면이 백주 대낮의 대한민국에서 재현되고 있다. 최근 보도된 용역폭력과 관련한 언론보도를 보면, 서부시대의 총과 악당이, 곤봉과 방패로 무장한 용역으로 바뀌었을 뿐, 법보다 주먹이 우선하는 서부시대와 하나도 다를 바 없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국가권력은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고 이해집단 간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며, 그 수단이 법에 기초한 사법권과 공권력이다. 하지만 이렇게 부여받은 사법권과 공권력이 권력과 기득권 세력에겐 보호막으로, 노동자와 서민대중에겐 탄압의 수단으로 남용 또는 오용되어 왔다. 더욱이 최근 MB정부 들어서 노조파괴의 효율적인 방법으로 애용(?)되는 용역폭력은 공권력의 남용과 오용을 넘어, 국가가 공권력을 민간에게 넘겨준 공권력의 민영화에 다름 아니다.

경비용역업체는 말 그대로 민간 영역의 경비업무 대행업체일 뿐이다. 또 그 업무는 방어적이며 과도한 물리력을 수반하지 않아야 한다고 경비업체 관련법에 분명히 명시돼있다. 하지만 작금의 용역폭력 사태를 보면 경찰조차도 함부로 행사하지 못하도록 엄격히 규정된 물리력을 일개 용역업체가 백주대낮에 서슴없이 자행하고 있다.

더욱 한심한 것은 이를 감시하기 위해 출동한 경찰이 삶의 터전인 생산현장에서 추악하고 위협적인 욕설, 곤봉과 방패 등의 불법 무기류로 자행되는 살인적이고 야만적인 폭력행태에 뒷짐을 지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 공권력의 현주소이다.

파업 및 노사 갈등현장의 경찰은 이런 용역업체에 의한 불법적 폭력을 감시하고 차단하고 처벌하는 것이 그 임무이다. 따라서 방조 내지는 묵인하는 것은 직무유기를 넘어 공권력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아무리 시장만능주의지만 공권력마저 시장화에 내다팔고, 민영화 한다면 과연 우리사회가 선진국가라 할 수 있겠는가? 힘센 놈이 살아남는 야만의 사회, 동물의 왕국과 무엇이 다른가?

이번 사태의 또하나의 원인은 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다. 우리 사회에 왜곡된 많은 개념 중 하나가 노동문제이다. 필자가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노동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질문하면 땀 냄새, 과격시위, 파업, 심지어는 빨갱이라는 대답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이 얼마나 왜곡되고 편향된 교육의 결과인가?

노동이란 우리 모두의 삶의 수단이자, 인생의 존재를 구현하는 숭고한 자아실현의 과정이자, 우리의 삶 그자체이다. 귀족노조 운운하는 자들은 하루 10시간 이상 유해물질이 위협하고, 과도한 노동강도에 시달려 하루에 7~8명, 1년이면 2,500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하고, 매년 10만명이 산업재해를 겪는 생산현장에 일주일만 일해보라고 하라.

굳이 마르크스의 노동가치론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노동 없인 생산이 이루어질 수 없으며, 생산이 멈춘 사회는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생산의 일선에서 우리사회의 발전을 실제로 견인하는 노동의 소중함이 경시되고,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이해관계로 왜곡되며, 심지어 악으로 취급되는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

건강하고 안전한 작업환경, 정당한 대우라는 지극히 당연한 권리를 위한 삶의 현장에서, 노동자의 인권을 유린하고, 공권력마저 무시하는 용역폭력이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 사회는 정의도 상식도 없는 야만사회가 되는 것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용역에 들어가는 엄청난 비용과 용역노조(?)의 파업에 진저리친 사업주가 영화 로보캅에서처럼 파업도 않고 뭐든 시키는 대로 복종하는 로보깽을 고용하지 않을까 하는 끔직한 상상을 하게 된다. 대선이 불과 서너 달 앞으로 다가왔는데 이런 사회적 폭력과 야만성이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권 전체의 직무유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