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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는 죽을 때 제 굴을 향한다고 한다. 제가 태어난 고향을 잊지 않음을 비유한 말인데, 일러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 한다. 유년기의 땅과 하늘이 제 피와 살이 됐으며, 그를 통해 비로소 영혼을 지니게 됐다는 점에서 고향은 어머니의 품과 같다. ▶대기업 '한진'의 고향은 인천이다. 한진사사(社史)를 보면 창업주 조중훈 선생이 서울에서 태어났다고 하나, 인천 중구 용유도의 고로(古老)들은 조중훈 선생과의 소싯적 인연을 전하고 있다. ▶창업주의 실제 출생지가 어디든 간에 대기업 한진의 태생지는 현 인천일보 윤전실 바로 옆 건물인 ㈜한진상사 사옥이었다. 거기서 기업사가 태동됐던 것이다. ▶또 ㈜한진상사가 없었다면, 오늘날 세계항공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대한항공이나 오대양육대주를 누비고 다니는 한진해운 그리고 한진중공업 등이 탄생했을 리 없다. ▶그럼에도 한진의 계열사들은 '모천회귀(母川回歸)'의 원초본능까지 상실한 것같다. 물론 인하대학교를 인수해 국내 10위권 대학으로 가꾼 것은 칭찬받을 일이나 그마저도 기업의 규모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가깝다는 평이 일반적이다. ▶인천 지역사회로 초점을 돌리면 사정은 더 초라하다. 지역사회 공헌도가 오리무중이다. '올인'은 고사하고 구색맞추기에도 못 미쳐 보이는 것이다. 인천국제공항의 실질적 수요자요, 수십년 래 인천항에 전용부두를 운용하고 있고, 이번엔 북항 배후부지의 용도변경을 통해 수천억원의 특혜까지 누리는 데도 말이다. ▶한진은 창업 이래 인천에서 혜택을 받은 반면 베푼 것은 가물에 콩나기와 같았다. 조양호 회장이 시민들에게 약속한 '한진기념관' 설립조차 감감 무소식이고, 화급한 아시안게임보단 평창동계올림픽에 열을 올리고 있는 모습이다. ▶인하대 내의 예술대학 설치는 창업주 고 조중훈 선생이 인천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 약속이었고, 대한항공 계열 저가항공사인 '진 에어'의 인천시민 우대는 조양호 회장의 최근 확약이었지만, 지금까지 실현된 것은 없다. 현재 '진 에어'는 만년 단골인 제주도민에게만 10%의 할인혜택을 주고 있다 한다. 인천의 하늘과 바다와 땅을 흔쾌히 내어 준 시민들의 '짝사랑'만 처량하게 보인다.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