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종팔 한국도선사협회장
   
▲ 도선사 권익보호와 인천항 발전과 관련해 말하는 나종팔 회장의 표정에 단호함이 묻어난다. 여의도에 있는 도선사협회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 내내 나 회장은"도선료 현실화와 인천항 발전을 위한 정부의 대책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깊게 심호흡을 한다. 도선사 면허를 딴 지 6년이 지났지만 이번처럼 긴장하긴 처음이다.

오늘(2007년 1월 17일)은 인천 북항에 역사적인 첫 배가 들어오는 날이다.

인천항도선사회 회장으로서 선듯 북항 첫 입항 선박의 도선을 맡았지만 쉬운 작업이 아니다.

한겨울 바닷가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이 불지만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오로지 안전하게 선박을 접안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추위따윈 뒷전이다.

다만 첫 도선이란 점이 부담이다. 수 차례 예행 연습을 했지만 아무래도 익숙치 않은 항로다.

여기에 북항 항로는 여전히 준설 중이다. 항로가 제대로 정비가 안 됐기 때문에 위험요소가 많다.

오전 11시 중국선적 지밍호(1천972t급)에 올랐다. 천천히 속력을 높여 동국제강부두에 다가선다.

하지만 난관에 부딪혔다. 접안을 위해 90°가까운 대각도로 배를 꺾어야 하는데 말을 듣지 않는다. 오히려 조류에 밀려 인근 SK에너지 부두로 기울어진다.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위기다. 그렇다고 속력을 늦출 순 없다. 속력이 줄면 배의 통제가 더욱 어렵다.

정면돌파다. 속력을 더욱 높여 방향키를 잡자 배가 정상 항로에 진입한다. 그렇게 북항 개장 후 첫 선박 접안이 이뤄졌다.

-나종팔(59) 한국도선사협회장의 일화다.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베테랑 도선사'이다-


▲ '베테랑 도선사' 한국협회장 되다

내륙인 전주에서 고교를 졸업한 청년은 부산 한국해양대에서 바다를 품었다. 현대상선 최연소(29세) 1등항해사를 거쳐 서른 둘의 나이에 마도로스의 꿈인 선장이 됐다.

외항선을 끌고 전세계 바다를 누비던 청년은 불혹의 나이에 도선사에 도전했다. 이후 10여 년 인천항 도선사로 활동하며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지난 2월 한국도선사협회장에 올랐다.

나종팔 한국도선사협회장은 요즘 눈코 뜰 새 없는 일정을 소화한다.
오전 임직원 회의가 끝나면 곧장 사람들을 만나러 간다. 점심과 저녁, 매일 10여 명의 관계자와 미팅을 갖는다. 전국 11개 지회에서 활동하는 247명의 도선사 권익을 위해서다.

"도선사 특성상 정부 정책에 무척 민감합니다. 각종 법률 개정을 통해 협회에 산재한 문제해결에 나서고 있죠."

정부관계자 뿐 아니다. 협회장으로서 지방 도선사회를 순회 방문하며 직접 애로사항을 듣는다.

"지난 4년간 도선료가 동결됐습니다. 현실적 인상이 필요합니다."

도선사회는 급등하는 유가에 비해 제자리 걸음인 도선료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 각종 할증제도 개선과 도선사 정년 문제도 현안사항이다.

나 회장은 "도선서비스를 중소기업으로 분류해 특별세액 감면 등 현안 사항을 해결하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 협회 미래를 밝히다

도선서비스 개선은 모든 도선사의 목표다. 도선료 요율 인상 및 선박 조종 시뮬레이터 개발 등 협회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 회장은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도선사와 도선업무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겠다"며 "항만물류 활성화는 물론 활발한 사회활동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나 회장은 장학사업을 꼽았다. 현재 글로벌 해운인력을 비롯해 법학전문대학원 장학생, 경제사정이 어려운 대학생을 대상으로 펼치는 장학사업을 더욱 늘려나갈 계획이다. 또 한국심장재단 등 사회단체와 연계해 심장병 어린이를 후원하는 등 희망을 전달하고 있다.

도선사협회는 심장병 수술 지원과 장학사업 등 사회환원 활동에 연간 8억 5천만 원을 지원하고 있다.

아울러 도선사를 위한 현실적인 지원도 병행한다.

나 회장은 "도선사용 선박조종 전문 시뮬레이터를 도입해 선종별로 기상조건 및 조류에 따라 다양한 실습이 가능토록 했다"고 했다.

이를 통해 도선사의 선박조종능력 향상은 물론 새로운 선종의 특성을 분석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나 회장은 "2016년에 한국에서 처음으로 국제도선사협회총회(IMPA)가 열린다"며 "완벽한 준비를 통해 우리나라 도선사의 높은 위상을 세계에 알리겠다"고 말했다.


▲ 인천항을 말하다

"인천항 발전을 위해서는 인천항 항로 준설과 항만배후단지 인프라 구축이 동반돼야 합니다."

나 회장은 지난 2001년 인천항에서 도선사 업무를 시작했다. 그동안 인천항도선사회 회장과 인천항발전협의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누구보다 인천항에 대한 애정이 깊은 이유다.
나 회장은 인천항 발전에 두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항로 준설과 배후단지 개발을 주장했다.

그는 "인천항 수심이 14m에 불과해 대형선박 입출항이 어렵다"며 "인천 신항 항로를 16m까지 준설해 1만TEU급 선박 기항을 유도해야 한다"고 했다.

또 "항만배후단지에 대한 자유무역지역 지정을 통해 물류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항만배후단지가 단순한 물류기능을 넘어 제조, 상업, 비즈니스 등 복합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천항의 경우 정부의 지원이 절실합니다. 이를 위해 지역 정치권은 물론 인천시 및 지역항만업계 모두가 이해관계를 떠나 힘을 모아야 합니다."


▲ 후배에게 당부하다

처음부터 도선사가 되려는 사람은 많이 않다. 대부분 해기사들은 육상근무를 선호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육상근무 자리가 부족한 상황에서 육지와 바다를 오가다 보면 제대로 해상경력을 쌓지도 못하고 선박조종에 대한 이해도 떨어지기 일쑤다.

나 회장은 "오로지 바다만을 생각하며 묵묵히 해상생활을 한 사람만이 도선사가 될 수 있으며, 또 그렇게 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도선사가 되려고 다짐했다면 자기 암시가 중요하다"며 "노력하는 사람만이 도선사라는 명예를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도선사가 되기 위해서는 5년 이상의 선장경력과 해기사 자격증이 필수다.

해기사 자격증은 한국해양대학, 목포해양대학교, 한국해양수산연수원 등의 교육과정을 통해 취득할 수 있다.

이후 원양을 항해하는 선박에서 3등항해사부터 2등·1등항해사, 이후 6천t 이상의 선박에서 5년 이상의 선장경력을 쌓아야 한다.

자격 요건이 갖춰졌어도 국가에서 실시하는 도선사 자격시험(필기·면접)을 합격해야 도선사가 될 수 있다.
/글·사진 배인성기자 isb@itimes.co.kr


● 나종팔 한국도선사협회장은 …

- 1953년 3월25일 전북 김제 출생
- 전주고, 한국해양대학교 항해학과 졸업
- 서울대 해양정책 최고과정 수료(6기)
- 1976년 범양상선 3등항해사 입사
- 1985~2000년 현대상선·동진상선·세진선박 선장
- 2001년 인천항도선사회 도선사
- 2003년 인천도선㈜ 대표이사
- 2007년 인천항도선사회 회장
- 2007~2009년 인천항 발전협의회 부회장, 항만행정협의회 위원, 새얼문화재단 운영위원
- 2012년 한국해양소년단연맹 부총재, 중앙도선운영협의회 위원장, 전국해양산업총연합회 부회장, 한국도선사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