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장 명인전'출연 앞둔 배우 박정자
   
▲ 인천 소래에서 태어난 연극인 박정자 씨는"고향을 생각하면 협궤열차와 신흥동 골목길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박 씨가 자신이 낭독공연을 펼칠'남동문화예술회관 스튜디오 제비'를 둘러보고 있다.


'음, 50년 만의 귀향이라 … . 어렸을 때 보았던 소래 앞바다, 친구들과 고무줄 놀이를 하던 신흥동 골목길은 그대로일까.'

그녀가 버스차창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카키빛 강물이 그녀의 눈빛 만큼이나 깊게 흐르고 있었다.

'난 그 꼬마열차가 정말 좋았어, 협궤열차가 덜컹거리며 바다 위를 천천히 지나갈 때면 마치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지. 버스운전사처럼 바로 내 앞에 앉아 운전하는 기관사 아저씨도 정겨웠고, 열차 창문을 가리는 빛 바랜 핑크색 커튼도 생각 나. 아아, 내 고향 소래는 지금 어떻게 변했을까.'

그녀의 머릿속으로 무수한 상념이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연극인 박정자(71)가 탄 버스가 마침내 인천에 닿았다. 지난 3일 오전 그녀를 만나기 위해 남동문화예술회관을 찾아갔다. 중절모와 레이스가 달린 검정색 원피스 차림을 한 그는 남동문화예술회관 박은희 관장과 함께 회관 3층에 위치한 '스튜디오 제비'를 돌아보는 중이었다.


"이쪽이 무대가 되구요, 여기는 칸막이를 칠 거예요."

박은희 관장의 설명을 들으며 공연장을 꼼꼼히 뜯어보는 박 씨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이따금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안정되고 선명한 톤의 목소리를 보아 성우 출신이 틀림없었다. 어느 정도 3층 이곳저곳을 돌아보았을 때 셋이 함께 휴게실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사이가 막역해 보였다.

-관장님하고는 잘 아시는 모양입니다.

"그럼요, 극단 '자유'에서부터 오랫동안 함께 연극을 한 선후배 사이인걸요. 제가 고향 소래에서 공연을 하게 된 것도 박 관장 때문이지요. 박 관장은 인천의 보배예요."

박 씨가 인천을 찾은 것은 오는 9~15일 인천 공연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박정자의 50년은 무엇을 닮았을까'란 주제로 '남동문화예술회관 제1회 내고장 명인전'에 출연한다. 자신의 연기생활 만 50주년을 회상하는 자리다.

"대학교 2학년이던 62년 시작했으니까 올해로 꼭 50주년이 됩니다. 이번 공연을 통해 제가 걸어온 길을 관객들과 함께 되돌아보고자 해요."

명인전을 통해 그는 그동안 자신이 출연했던 작품과 관련한 사진, 연극포스터 등 전시자료를 보여줄 생각이다. 동영상도 준비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9일, 10일 열리는 '낭독공연'이다.

"포스터만 잔뜩 붙여놓는 것은 재미가 없잖아요? 그래서 낭독공연이란 것을 준비했어요. 연극인 정동환, 김성녀, 서이숙, 박상종, 김은석 씨와 같은 연극인들과 함께 하는 자리이지요. 인천에 오기 전 서울에서 한 번 했는데 평이 좋았어요."

박 씨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45분으로 줄여 낭독할 예정이다. 낭독공연에선 연기만 안 할 뿐, 무대에 서서 감정이입을 통해 대사를 하므로 '세미연극'이라 할 수 있다. 50년 연기생활을 처음 어떻게 시작한 걸까.

"영화감독이던 오빠 영향이 컸지요. 어려서부터 오빠가 연극하는 걸 보고 자랐거든요. 연극무대를 보면 언제나 가슴이 뛰었어요."

소래에서 1남4녀의 막내로 태어난 박 씨는 오빠 상호 씨가 출연하는 연극을 보며 연극인에 대한 꿈을 키운다. 끼가 밖으로 터져나온건 대학 2학년 때이다.
이화여자대학교 신문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던 그는 이대 문리대 연극부에 들어가며 무대에 오른다. 그런데 왜 신문학과에 진학한 것일까.

"오빠가 저더러 신문기자가 어울린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신문학과에 진학했는데 학교 연극부에 들어가면서 연극에 전념하기로 한 거지요."

대학진학 후 신문보다는 연극에 열정을 쏟았던 그는 63년 동아방송국이 개국하면서 1기 성우로 입사한다. 그리고 66년 극단 '자유'의 창단 멤버로 참여한다. 그 때 함께 했던 사람들이 최불암, 김혜자, 김용림, 추송웅 씨 같은 연기자들이다. 그렇게 <피의 결혼>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19 그리고 80>을 비롯한 140여 편의 명작무대에 서며 연극인 외길을 걸어왔다.

반 세기 동안 한 길을 걸어왔다면 나름 철학이 있을 터, '박정자에게 연극은 무엇인가'란 원초적 질문을 던졌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는 관조적인 시선으로 기자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특별한 철학은 없습니다. 제 연극에 대한 정의도 내릴 수 없구요. 제가 생각하는 연극은 여러가지 거울 같은 것입니다. 사랑하고 미워하고 용서하고 위로하는 그런 사람들의 모습 말이지요. 연극은 제가 선택한 길이었으니까 열심히 했을 뿐이지요."

'철학이 없다'는 겸손함이 바로 박정자의 연기철학, 인생철학이었다. 한두 번쯤은 고단한 날도 있었을텐데, 그는 무대에 올라가면 어디선가 용암처럼 부글부글 끓는 에너지가 솟아난다고 했다.

"그건 다른 에너지예요. 모든 연극배우가 무대에 올라 객석을 본다면 저와 같은 기분을 느낄겁니다."

-그럼 다시 태어나도 연극을 하실건가요.

"아뇨, 다시 태어난다면 요리를 잘 하고 싶고, 음악을 듣고 싶어요. 좋은 책도 많이 읽고 싶고요."

그에게 평범한 사람의 일상은 차라리 '그리움'이었다. 이 말은 연극 외엔 다른 아무 것도 돌아보지 못할 만큼 '연극에 미쳐' 살아왔다는 얘기였다. 그는 결국 자신이 "연극 아니고는 할 일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라고 고백했다.

50년 만에 찾은 고향의 모습은 그에게 어떻게 비쳤을까.

"인천아트플랫폼이라는 곳을 가봤어요. 친구들과 전철을 타고 인천역에서 내려 보았는데 너무너무 좋은 겁니다. 인천시가 옛날 창고를 없애지 않고 그렇게 새로운 문화명소로 탄생시켰다는데 박수를 보냅니다."

그는 오는 13일 새얼아침대화 강연자로도 나선다.

/글·사진 김진국기자 freebird@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