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신 날 만난'佛母'이방호 목조각장
   
▲ 35년째 불상을 조각해온 목조각장보유자(인천무형문화재 제22호) 이방호(56)씨는"다시 태어난다면 스님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 씨가 계양구 다남동 자신의 작업실에서 자신이 조각한 불상을 뒤로 한 채 활짝 웃고 있다.


수백개 조각칼로 한조각씩 다듬어 … 완성까지 3~4년

중학교 졸업 후 유학 본격적 목공예 공부 '35년 외길'

"욕심없고 누구든 넉넉히 품는 진묵대사처럼 되고파"


그는 자신을 '불모'(佛母)라고 했다.

부처의 어머니란 뜻이다.

불교에선 불상을 조각하는 사람을 그렇게 부른다고 말해줬다.

무형의 통나무를 깎고 다듬어 인자한 곡선이 흐르는 부처님을 탄생시키는 사람이니 틀린 말이 아니다.

사찰의 대웅보전에 모셔질 '부처님을 낳는' 사람.

불모는 혹시 승려일까.

지난 28일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부처님의 형상을 빚어내는 인천의 불모를 찾아갔다.

인천무형문화재 제22호 목조각장보유자 이방호(56) 씨의 산실은 계양산 깊은 산중에 있었다.

책상 위를 가득 메운 빽빽한 조각칼들, 어둠 속에서 빛줄기를 받아 명암을 이루는 불상조각들.

불모의 작업실은 어둡고도 밝았다.

작업실 바닥은 푹신푹신했다.

나뭇잎 크기만한 톱밥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들어서자마자 한 켠에 놓여 있는 두 개의 커다란 불상이 눈에 들어왔다.

석굴암에 있는 불상만 해 보였다.

하나는 거의 부처님의 형태를 하고 있었으나 다른 하나는 형체가 분명하지 않은 천하대장군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저 부처님은 마무리 작업만 남겨놓은 상태구요. 그 옆의 부처님은 반 정도 조각을 한 것이지요."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하나의 불상을 완성하기까지는 보통 6개월에서 수년까지 걸린다.

물론 조각을 시작한 이후 시간만을 말하는 것이다.

나무를 가져와 응달에 2~3년 간 건조시키는 과정까지 합하면 3~4년은 족히 걸린다고 봐야 한다.

"좀 만져봐도 될까요?" 불상 앞으로 다가가며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그러세요."

완성된 불상의 표면에 손을 대 보았다.

기름칠을 한 것처럼 매끄러웠다.

"마무리는 사포 같은 것으로 하시겠군요."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조각도로만 작업을 합니다. 사포로 쓱쓱 문지르는 것은 무성의한 짓입니다. 저는 칼끝으로 한 조각 한 조각 파고 다듬고 해야지만 제가 불모란 생각이 듭니다."

불모의 작업책상 위에 수백 개의 조각칼이 쌓여 있는 이유가 비로소 이해됐다.

얼핏 보기에 그 칼이, 그 칼처럼 보였으나 그는 "용도가 다 다른 것"이라고 했다.

형광등 불빛을 받은 칼날들이 차갑고 날카롭게 빛났다.

"자칫 마음을 놓거나 다른 생각을 하게 되면 손을 베기가 십상이지요. 그 옛날 덕이 높으신 스님들이 불상을 조각한 이유가 다 있는 것입니다."

그는 조선시대 후기 일섭스님에서 시작해 석정스님과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전기만 목조각장으로 이어지는 계보의 끝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2009년 인천시무형문화재가 됐으며 그와 같은 지역문화재는 5명 정도 된다.

그는 언제부터 부처님을 만들기 시작했을까.

"초등학교 때인가, 서울에 사는 고종사촌형이 공예를 했었는데 방학 때면 저희 집으로 와서 목조각품을 만들곤 했지요. 어린 마음에도 그 모습이 참 좋아보이더군요. 제가 태어난 곳이 바로 지금 이 자리에 말이죠. 장기알이나 다식판 등을 만드시던 할아버지 영향도 있었던 것 같고요."

지금의 작업실인 계양구 다남동 70번지에서 낳고 자란 그는 계양중학교를 졸업한 뒤 고종사촌형이 있는 서울로 유학을 떠난다.

본격적으로 목공예를 배우기 위해서였다.

청소년기 때부터 목조각을 배우기 시작한 그는 불상만 조각하기로 하고 전기만 선생을 찾아간다.

그렇게 35년을 불상과 함께 살아왔다.

오래도록 외길을 걸어왔다면 나름의 철학이나 깨달음이 있을 터, 목조각장만이 알 수 있는 세상이 궁금했다.

"진묵대사란 분이 계셨습니다. 다시 태어난다면 그 진묵대사와 같은 스님이 되고 싶습니다."

불모의 이야기인즉슨, 그 옛날 전라도 어느 산 능선에 진묵대사란 학승이 살고 있었다.

진묵대사는 도량이 어마어마한 사람이었다.

산등성이를 요로 삼고 구름을 이불로 삼아 잠이 들었고 달빛을 촛불로 생각해 잠자리의 불을 밝혔다.

그가 춤을 추면 그의 장삼자락이 다른 산을 휘감았고 바닷가는 그의 술을 담아놓은 술독이었다.

"실로 엄청한 스케일의 스님 아니겠어요? 그렇게 살아가는 스님의 내면세계는 끝이 보이지 않는 우주가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그는 욕심이 없고 누구라도 넉넉히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을 진묵대사와 같은 승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요즘의 불교계가 귀담아 들어야 할 부분이었다.

우연의 일치일까.

그는 자신의 생일이 '부처님 오신날'과 똑같은 4월 초파일이라고 했다.

56회 생일을 맞는 소회나 부처님 오신날에 대한 의미를 얘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제가 듣기로 모든 사람은 반야의 씨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전세계 인구인 60억 명이 모두 그 씨를 몸에 품고 있는 셈입니다. 그 싹을 발아해 잘 키우면 부처가 될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평생 속세의 중생으로 살다가 가는 것이지요."

그는 "똑같이 태어났는데 어떤 사람은 위인이 되고, 어떤 사람은 범죄자가 되는 것은 반야의 씨를 끄집어냈느냐, 그렇지 못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며 "인간들이 어떤 노력을 하느냐에 따라 부처가 될 수도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며 미소지었다.

"아, 그렇다고 제가 반야의 싹을 틔웠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저 역시 반야의 씨를 끄집어내기 위해, 다시 말해 성불을 향해 열심히 노력할 따름이지요. 그럼 다시 태어나 진묵대사와 같은 스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같은 칼이라도 어떤 칼은 사람을 해치고, 어떤 칼은 부처님을 빚어낸다.

정교하게 조각도를 놀리는 그의 손이 탐욕을 버리고 마음을 깨끗히 하라는 무소유의 실천을 촉구하는 것처럼 보였다.


/글·사진 김진국기자 freebird@itimes.co.kr


● 목조각 불상은 …

우리 나라 목조각 역사는 불교가 전래하면서 시작됐다.

사원건축과 불상조각을 중심으로 발전해왔으며 뛰어난 불교유물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일본 호류사의 백제 관음상이나 전라남도 송광사의 국보 제42호 목조 삼존불감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이방호 목조각장은 창칼, 평칼, 삼각칼, 반원칼, 원칼 등 다양한 조각칼로 음각, 부조, 양각, 투조, 환조, 음양각 등의 기법을 이용해 불상을 제작한다.

그가 가장 선호하는 나무는 은행나무이며 향나무, 전단향나무, 침향목, 피나무 등도 재료로 사용한다.

나무들이 다양한 이유는 같은 나무라 해도 부위에 따라 견고함과 방향성, 무늬, 색깔 등이 하나같이 다르기 때문이다.

보통 큰 작품을 할 때는 큰 나무를 쓰지만 작은 나무 여러 개를 사용해 조립하기도 한다.

인천 강화도의 선원사와 관음사, 중구 자유공원의 백련사, 부평구 산곡동의 용천사에서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작품도 수백 년이 지난 뒤 좋은 불교유물이 되길 희망하는 마음으로 불상을 제작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