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환상 - 알렉스 캘리니코스

"오늘 여기서 세계사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1792년 9월 프랑스 혁명군이 발미에서 격렬한 전투 끝에 구체제의 군대를 격파했을 때 한 말이다.

프랑스 혁명은 유럽뿐만 아니라 인간의 자유와 평등, 존엄성이 존중받는 새로운 가치관과 시대를 알렸으며 공화주의와 부르주아의 등장, 산업혁명의 초석이 된 세계사적인 대사건이었다.

과문한 독서광에 불과한 나 역시도 괴테의 통렬한 전언처럼 프랑스 혁명이야말로 '세계사의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프랑스 혁명 이후 세계사는 자유와 평등, 인권이 지속적으로 신장됐지만 자본주의의 등장으로 자유와 평등, 인권이 말살되는, 또 다른 불행의 시대가 이어진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잔혹성을 밑바닥까지 드러낸 1·2차 세계대전부터 제국주의, 냉전체제 등이 자본주의 시대에 벌어진 일이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총칼과 포탄, 미사일, 원폭이라는 살상무기로 직접 인간의 생명을 빼앗지 않았을 뿐이지 자본주의라는 괴물은 공황과 불황, 부의 독점을 통해 또 다른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3차 세계대전은 총성과 포성 없이 진행되고 있다.

총성과 포성 없는 이 전쟁터에서 자본주의 이데올로그들은 자본주의의 불멸성을 찬양하고 있다.

마치 "여왕 폐하 만세!"라고 외치는 것처럼.

하지만 과연 이 시대가 평화로운가? 자본주의체제는 불멸의 권위를 계속 이어갈 것인가?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무너지는 환상>(책갈피)을 소개하며 그 해답을 찾아본다.

이 책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역사적, 이론적으로 추적하고 있는 책이다.

먼저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무너지는 환상>에서 현실 자본주의의 몰락과정을 보여준다.

그는 2008년 9월 15일 리먼브러더스의 파산과 함께 찾아온 세계 금융위기를 복기하며 또 다른 '새로운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캘리니코스는 "세계 금융위기가 30여년을 지배해온 신자유주의의 몰락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건"이라고 한다. 사실 2008년 금융위기는 1930년대 대공황 이래 최대 규모의 금융폭락이었다.

그때까지 시장 만능주의이자 시장 자유주의인 신자유주의는 세계 경제의 주된 이념이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정책을 고수해왔던 부시 정부는 금융위기를 일으켰던 모기지 회사 패니메이, 프레디맥, AIG를 인수하고 영국 정부는 스코틀랜드왕립은행, 로이드뱅킹의 최대주주가 되면서 신자유주의는 그 생명을 다했다.

심지어는 열렬한 '자유방임 지상주의 공화당원'인 미국 연방준비위원회 의장 그린스펀조차도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금융위기를 불러일으켰다고 인정하게 된다.

도이체방크 요제프 총재 역시도 "시장의 자기 치유 능력을 더는 믿지 않는다"며 신자유주의를 부정하게 된다.

사실상 신자유주의는 파산 선고를 받은 셈이다. 그렇다면 괴테가 말한 것처럼 "세계사의 새로운 시작"은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까?

캘리니코스는 "자본주의의 소유관계를 완전히 폐지하거나 적어도 크게 수정한 민주적 계획 경제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혹자는 계획경제가 사회주의의 낡은 이데올로기라고 말할 수 있겠으나 적어도 1970년대까지 자본주의의 경제를 떠받친 케인스주의 역시 정부의 수요관리와 화폐시장 개입을 적극 주문하며 일종의 계획경제라 할 수 있다.

캘리니코스는 케인스주의에서 한발 더 나아간 것뿐이다.

그는 민주적 계획경제를 위한 전제 조건으로 금융시장 장악, 경제의 핵심 부문에 대한 노동자 통제 아래 국유화, 누진세를 통한 사회복지 확대, 전 국민 기본소득제 도입 등을 제시하고 있다.

사족이지만 신자유주의는 밀턴 프리드먼과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 같은 새고전학파의 이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새고전학파는 시장은 가만히 놔두면 제대로 작동한다고 주장했는데, '시장'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면서 대공황과 불황, 실업, 금융위기를 초래했다.

이제 그 '고삐'를 틀어쥐어야할 때 아닐까?

/조혁신기자 chohs@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