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금자 오리 이원익 13대 종부·충현박물관 관장


"종손(宗孫)·종부(宗婦)는 업보(業報)다. 20기(基)가 넘는 묘소를 관리하고 1년에 10여 차례씩 30여년 넘게 제사를 지냈으나 이제 현대에 맞게 간소화했다."

조선시대 청백리 오리(梧里) 이원익(1547~1634)의 13대 종부 함금자(72) 충현박물관(광명시 소하2동 1085-16) 관장은 "큰 제사 때 제물을 높이 쌓아 올리는 고임을 했는데 지금은 하지 않고, 아침 6시 지내던 오리 할아버지 탄신일 제사도 오전 10시 추모기념행사로 바뀌었다"고 했다.

함 관장이 전국 10대 종가를 대상으로 논문을 쓰면서 조사한 결과 대부분의 종부들이 70~80대였다. 그들의 한결같은 이야기가 '지금 제사 지내는 것, 못할 일이다'였다고 한다.

제사 때면 도와주던 집안 일가 아저씨들의 도움을 받는 것도 어렵고, 핵가족화 되고 자녀들이 외국생활을 하다보니 제사 때마다 참석하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종가 박물관인 충현박물관은 전통 종가의 새로운 계승 대안과 위상을 재정립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는 듯했다.

이곳에는 오리 선생과 그의 직계 후손들의 유적과 유물을 보존하고 있어 경기 서남부 전통 종가(宗家)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오리 선생의 13대 종손인 이승규(72) 이사장과 함 관장 부부가 종가의 생활모습과 오리 선생의 충효 정신·청백리 정신을 보급하고자 종갓집 한켠에 2003년 건립했다.

대대로 내려온 종갓집이 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변신한 것이다.

솟을 대문 너머로 'ㅁ'자형의 종택과 불천위(不遷位) 제사를 지내는 사당인 오리영우(梧里影宇), 인조가 하사한 집인 관감당(觀感堂), 강감찬·서견·이원익을 배향하던 서원이 있었던 충현서원지(忠賢書院址), 오리 선생의 부모 내외 묘소 등이 야외 전시장으로 구성됐다. 전시실 충현관에는 오리 선생의 영정과 친필 등 유물과 목가구·제기 등 대대손손 종부들의 손때 묻은 살림살이가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

전시 생활용품을 살펴보면 의외로 특별하기보다는 흔히 보아온 우리네 집안 살림살이와 크게 다르지 않아 종가의 소박함과 검소함을 느낄 수 있다.

함 관장은 "대부분 경기도 종가들이 전쟁 등으로 파괴됐지만 저희는 종택과 사당, 서원, 묘소, 유물 등 종가가 갖추어야 할 요소를 모두 그대로 보존해 오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