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AALA문학포럼 찾은 中소설가 류전윈·옌롄커
   
▲ 류전윈


중국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류전윈과 옌롄커가 지난달 26∼29일 제3회 인천 AALA(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문학포럼에 참석했다. 옌롄커는 장편소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와 <딩씨 마을의 꿈> 등이, 류전윈은 <고향하는 아래 노란 꽃>과 <핸드폰> 등이 국내에도 소개해 많은 독자층을 가지고 있는 작가다. 류전윈과 옌롄커를 만나 그들의 문학세계와 중국문학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 먼저 중국의 전반적인 예술 영역에서 문학이 차지하는 위치를 알고 싶다.

-옌롄커 : 영화와 비교해보면 영화는 잘 나가다가 하향 추세다. 반면 문학은 상승 추세다. 특히 유럽에서 비교적 중국문학이 환영을 받고 있다. 프랑스에서 특히 중국 문학에 대해 관심이 많다. 중국의 당대 문학작품 출간으로 출판계가 호황을 누리고 있다.

반면 중국 영화 등 예술 전반은 한국의 영화 등 대중문화에 비해 밀리고 있다. 시장원리와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중국영화는 한참 잘나갈 때는 복잡한 중국의 사회 현실을 반영하고 예술로서 역할을 했다. 그런데 요즘 영화는 점점 세속화되고 있는 반면 오히려 문학은 중국의 변화와 복잡한 상황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류전윈 : 중국에서 예술 장르중 문학이 상대적으로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것은 중국과 세계와의 관계, 정치·사회·경제적 변화가 많은 가운데서도 다양성이 넓어졌기 때문이다. 소재면이나 모든 영역에서 작품 소재가 풍부해졌다. 문학도 그렇고 모든 예술이 그렇겠지만, 우수한 예술가들이 많아지고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학에서는 우수한 작가들이 우수 작품들을 만들고 있다.

반면 영화 같은 경우 작가들이 좋은 작품을 내놓지 못하고 퇴보하고 있다. 국제적인 경쟁력을 따지자면 문학이 타 장르보다 훨씬 불리하다. 문학은 언어이기 때문에 번역도 필요하고 독자들에게 쉽게 접근하는데 한계가 있다. 영화나 음악, 회화는 보기만 해도 혹은 듣기만 해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지만 문학은 국제경쟁력을 갖추기 힘들어도 선전하고 있다. 80대 원로 작가도 있고 80년대 90년대 출생 젊은 작가들도 있지만 그중에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작가들이 50·60년대 출생 작가들이다. 한국도 그 세대의 작가들의 작품이 많이 소개되고 있다. 중국의 작가들이 노벨문학상과 거론되는게 중국문학의 힘을 상징하는 것 같다. 중국 언어의 수사를 이해할 수 있는 심사위원들이 있다면 노벨상도 충분히 탈 수 있다.


▲ 당신들의 작품에 대해서 잠깐 얘기를 나누자. 당신들뿐만 아니라 위화 등 중국 작가들의 소설 중 여러 작품이 문화혁명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문화혁명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나오고 독자들의 관심을 끈 이유가 궁금하다.
 

   
▲ 옌롄커


-옌롄커 : 거꾸로 한국사람들은 왜 그런걸 좋아하는지 묻고 싶다.

-류전윈 : 과거 문화대혁명 배경 작품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지만 독자들이 그런 모습에 관심을 갖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중국의 그 같은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심리가 깔려있는 것이다. 정치화나 이데올로기화된 중국문학 이해방식은 중국문학의 겉만을 이해하는 것이다. 지금의 작가들도 좀더 중국의 현실을 다룬 작품들을 쓰고 있다. 그런 문학에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문화혁명기를 소설을 통해서 이해하려는 것보다 역사로 이해해야 한다.

옌롄커의 소설 <딩씨마을의 꿈>은 문화대혁명보다도 더 비참한 삶이 나온다. 독자들이 밀란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보고 체코의 독재상황을 독자들이 얘기했을 때 정작 작가는 분노했다. 밀란은 인간의 사랑을 얘기하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 당신들의 작품은 상당히 사회에 대해 비판적이다. 소설을 쓰는 목적은 무엇인가.

-옌롄커 : 옛날에는 어렸을 때는 유명해지고 돈을 벌기 위해 문학을 택했다. 그러나 글쓰는데는 목적이 없다. 오로지 쓰는 것이다. 만약에 삼사십대 때 그때까지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면 오늘날 나의 문학을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어느덧 오십이 넘어서 몸도 힘들고 하다. 문학을 하지 않는다면 할 것이 없다. 문학을 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문학은 내 생명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방법이다.

-류전윈 : 기본적으로 옌롄커 선생의 생각에 동의한다. 외부적인 조건, 명리를 위해서 문학을 한다면 좋은 문학이 나올 수 없다. 자기에게 써주는 책을 쓴다고 생각하면 보다 순수하고 문학의 원형에 가까운 책을 쓸 수 있을 것이다.


▲ 중국은 개혁개방 정책으로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뤘다. 그런데 인민들이 꿈꿨던 평등과 사회주의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것 같다. 중국 작가들은 중국사회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덩샤오핑의 말처럼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되는 것'인가?

-옌롄커 : 중국의 문제는 가난한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이 문제다. 중국사회의 문제는 단순히 빈부차이로만 말할 수 없다. 주요배경은 경제발전의 수혜가 도시로 집중됐다. 중국은 상대적으로 농촌 국가였는데 도농간의 문제 연해지역과 내지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사회가 급속도로 변하면서 해소되지 못한 문제다. 삼사십년 전 북한과 비교해보면 양상이 다른 걸 볼 수 있다. 중국은 사회주의이면서도 시장주의를 도입하고 실용주의로 나아갔다. 복잡한 양상을 보였다. 중국사회의 문제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해소되지 못한 욕망의 문제다.

이 같은 문제를 작가들이 문학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작가들뿐만 아니라 모든 지식인들이 나서서 중국사회를 보다 민주화시키고 인간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노력을 해야할 것이다. 작가라는 존재는 자기의 신분, 자신의 존재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다. 그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은 정치의 영역이다. 다만 문학은 사회에 믿음을 주는 것을 임무로 한다.

이것은 한국이나 일본의 문학도 마찬가지다. 서로 문학적 힘을 받아들여 사회에 믿음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은 한·중·일 문학의 공통적인 문제의식이다. 문학은 사회 전체가 직면하고 있는 곤경을 보여주고 해소하려는 길을 제시하는 걸 할 수 있다. 작품의 내용은 한없이 디테일로 들어갈 수도 있고 한없이 방대한 영역으로 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오늘날 중국 작가들은 사회적 기능을 충실히 하고 있는 편이라고 볼 수 있다. 문학은 옛날처럼 단순하지 않다. 한 인간 사회 모든 분야에 대해서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다양한 내용으로 접근해야 한다.


▲ 그런데 중국 문화예술을 보면 경제발전에 따라 상업주의가 눈에 띈다. 예컨대 중국 영화를 보면 <초한지>, <삼국지> 시리즈 등 대자본이 들어가는 블록버스터급 상업영화가 제작되고 있다. 한때 중국 영화를 세계에 알린 5세대 영화감독 장이머우, 천카이거는 상업영화를 만든다. 5세대 영화감독 중 톈좡좡 같은 감독만이 상업주의에서 빗겨나 있다. 현재의 중국 문학은 상업주의에서 어떠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가.

-류전윈 : 중국영화의 쇠락은 상업화 영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상업화는 미국이 훨씬 오래되었다. 그래도 미국은 좋은 영화를 만들고 있다. 중국 영화가 잘나간 이유는 문학작품을 영화한 것이 큰 힘이 되었다.

상업화를 달리 해석하자면 독자들에게 얼마나 대중적으로 환영을 받냐이다. 중국에서도 우수한 작가들의 좋은 문학작품이 꾸준히 환영을 받는다. 작가들의 책이 잘 팔려서 돈을 잘 버는 것은 연예인이나 스포츠맨들이 돈을 버는 것과는 다르다. 작가들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존엄을 버는 것이다.

-옌롄커 : 반가운 상황은 중국 영화가 상업화 추세로 가다가 최근 6세대 감독 펑샤오깡 같은 경우 제일 멀리 상업화로 달려갔다가 문학영역으로 돌아오고 있다.

/조혁신기자 chohs@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