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 다큐영화'달팽이의 별'제작 이승준 감독
   
 


오직 손가락 끝으로 세상을 보고 듣는 시청각중복장애인 영찬 씨와 척추장애로 남들보다 아담한 몸집이지만 마음만큼은 바다처럼 커다란 순호 씨가 만들어가는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는 <달팽이의 별>가 암스테르담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대상 및 브라질 상파울로에서 개최된 잇츠올트루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중장편 최고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하는 등 국내외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인천출신의 이승준 감독(사진)을 만나 보았다.

▶ 영화 <달팽이의 별>은 어떤 영화인가?

한 시청각중복장애인과 척추장애를 갖고 있어서 키가 아주 작은 그의 부인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2009년 봄부터 2년의 제작과정을 거쳐 완성된 작품이다.

국내엔 시청각중복장애인의 존재가 잘 안 알려져 있다.

헬렌켈러는 알지만 한국에도 그런 분들이 계시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다.

그런 사회적인 맥락 속에서 시작했지만, 영화는 오히려 두 사람이 갖고 있는, 세상을 바라보고 느끼고 표현하는 독특한 감각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비장애인들은 스쳐 지나기 쉽고 굳이 알려고, 느끼려고 하지 않지만 가치가 있는 것들을 주인공들의 일상 속에서 발견해나가는 다큐멘터리다.

또한 서로가 가진 지독한 외로움을 누구보다도 공감하고, 그 위에서 싹튼 소중한 사랑을 다루고 있다.

장애인을 다루고 있다고 해서 영화가 결코 어둡거나 신파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

기존의 미디어가 가져왔던, 장애인에 대한 동정의 시선은 철저하게 배제하면서 오히려 유쾌하고 즐겁게 풀어가는 영화다.
 

   
 


그래서 관객들은 '손수건을 준비했는데 기분 좋게 웃고 나왔다'라는 반응을 보이곤 한다.

▶영화에서 담아내고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인가?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는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보고 듣는 것이 진실에 가까워지는 방법은 아니다.

세상에 진실하게 다가가려는 마음이 없는 한 세상을 바르게 바라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주인공들은 그런 마음이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잊고 살아가는 것들의 소중함을 관객들과 공감하고 싶었다.

그리고 사랑은 서로에 대한 외로움을 공감하는 데에서 시작하고, 그래야 오래도록, 깊이 지속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을 나누고 싶었다.

해외 관객이나 영화관계자들도 주인공들이 갖고 있는, 세상에 대한 섬세한 감각, 따뜻한 마음, 그리고 두 사람의 애틋한 사랑에 공감을 했다.

▶이 영화를 제작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그리고 영화의 주인공들과의 인연은?

방송프로그램 제작을 통해서 처음 만났다.

2008년 봄 한 공중파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 인간의 '손'을 과학적으로 접근했는데 그 때 주인공을 처음 알게 됐다.

주인공은 2006년 일본의 시청각중복장애인 대회라는 행사에 초청을 받았었는데 그 때 주인공이 손가락으로 의사소통하는 '점화'라는 것을 배웠고, 한국에 돌아와서 그 점화를 퍼뜨렸다.

그러다보니 언론에서 그들을 다뤘고, 나 역시 언론을 통해 주인공들을 처음 알게 됐다. 2008년 봄에는 이틀 정도 촬영을 했다.

그리고 그해 겨울 다큐멘터리 영화를 기획하다가 주인공들이 생각나서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 <달팽이의 별>은 가장 어두운 곳에서 가장 빛나는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영찬 씨와 순호 씨가 서로 두손을 잡고 다정하게 길을 걷고 있다.


소수자 중의 소수자인 시청각중복장애인을 다루는 것 자체가 다큐멘터리로서 충분히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측면보다도 두 주인공의 인간적인 매력에 더 끌렸다.

세상을 읽고 느끼는 남다른 감각에 반했다.

두 사람의 사랑도 애틋해 보였고. 사실 무료해 보이는 그들의 일상 때문에 주저했지만, 그 안에는 분명히 소중한 순간들이 있을 거라고 판단을 했다.

▶<들꽃처럼, 두 여자 이야기>라는 TV 다큐멘터리도 제작했고 다수의 다큐를 만들었다. 다큐멘터리만의 매력은 무엇인가?

다큐멘터리는 실재하는 것, 실존하는 것을 다룬다.

인물이 웃고, 울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분노하는 것들은 실재하는 것이다.

그 사실이 주는 전율감이 있다. '아, 저 사람은 지금 연기가 아닌 실재로 눈물을 흘리는 것이구나'라는 점을 느꼈을 때 받는, 극영화나 드라마는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감동과 공감이 있다.

그 점이 좋았고 여전히 좋다.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다큐멘터리를 좋아했다.

▶인천 출신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부산에서 태어났는데 내가 8살 때 인천 부평으로 이사를 왔다.

인천 부평남초교(당시엔 부평남국민학교)를 졸업했고, 인천 효성중을 다녔는데 내가 3회 졸업생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땐가 부평에서 간석동, 인천신명여고 바로 앞으로 이사를 갔다. 4학년 때부터 간석동에서 부평남초등학교로 버스를 타고 다녔다.

그 때 차비가 50원인가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차장이 있을 때였다.

한번은 10원인가 모자라서 쭈뼛거리며 40원을 줬더니 차장누나가 웃으면서 사탕을 줘서 기분이 좋았던 적이 기억난다.

3학년 땐가 친구들하고 처음으로 영화관 갔을 때가 기억난다.

서너 명이 갔는데 부평 대한극장이었고, 영화제목이 <혈육마방>이라는 홍콩무술영화였다. 집에 얘기 안하고 가서 두근두근대며 봤던 기억이 난다.

명절 때면 지금도 산곡동 본가에 가는데 그 때마다 중학교 동창 친구들과 꼭 만나서 사는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인천은 내게 가장 마음이 편한 곳이다.

▶인천에서 영상산업 또는 영화예술의 발전을 위한 제언을 한다면.
작은 규모로 제작되지만 좋은 영화들이 많이 있다.

그런 영화들 중에 기존의 상업영화, 큰 자본이 들어간 영화보다 훨씬 감동적이고 재미있는 작품들도 많다.

그런데 그런 영화들은 상영공간을 확보하는 게 너무나 어렵다.

좋은 작품들은 단순히 산업의 논리로만 접근해서는 안 될듯 싶다.

좋은 영화 많이 보기를 인천에서 시작할 수 있다면 어떨까 싶다. 서울과도 가깝고, 인구도 충분하다.

인천이 'B급영화' '독립영화'의 메카가 되었으면 한다.

상영공간 확보와 '좋은 영화 관람 문화'가 인천에서 시작된다면 인천이 실질적인 '문화의 도시'로 발돋움하는 데 크게 기여하지 않을까 한다.

/조혁신기자 chohs@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