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전윈 

2011년을 불과 이틀 남겨놓았던 날, 지인으로부터 중국 소설가 류전윈의 소설집 <닭털 같은 나날>(밀리언하우스)을 선물 받았다. 이번 주에는 <닭털 같은 나날>을 소개한다.

류전윈의 소설은 '책과 사람'에서 이미 소개한 바 있으며 그에 대한 프로필도 언급한 바 있다. 그러니 다시 한 번 구구절절 작가를 소개할 필요까진 없겠다. 굳이 작가에 대한 엑기스를 개소주 우려내듯이 요약하자면, 그는 중국을 대표하는 신사실주의 작가로 위화, 쑤퉁과 함께 가장 유명한 중국 작가다.

우리나라에도 장편소설 <핸드폰>, <고향 하늘 아래 노란꽃>, <객소리 가득 찬 가슴>이 출간됐다. 본 기자도 번역 출간된 류전윈의 소설 세 권을 모두 읽었으니, 류전윈의 광팬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의 소설 세계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형이상학적인 거대 담론이나 이데올로기와는 전혀 동떨어진 현실의 자질구레한 일상을 격동의 중국 역사 속에 담아낸다고 할 수 있겠다.

그의 소설은 첫 장을 넘기는 순간 바로 밤을 꼬박 새우게 하는 가독성 중독성이 있는데 이 같은 강렬한 중독성은 작가 류전윈만의 독특한 블랙 유머와 풍자 때문인 듯싶다.

쉽게 말하자면 무진장 웃기고, 재밌고, 거기에다가 중국만의 눈물겹고 비극적인 비장미까지 양념으로 버무려져 있다는 얘기다.

소설가 황석영은 류전윈의 소설에 대해 "지옥 같은 세상을 능청스럽고 냉정하게 그리고 있다. 온 세계를 뒤엎은 보통사람들의 고단하고 쓸쓸한 일상을 드러내면서, 어째서 대지에 펼쳐진 인간의 역사가 끊임없이 변화를 가져야 하는지를 깨닫게 한다"고 평한다.

자, 이제 책으로 돌아가 보자. 이 소설집에는 표제작이기도 한 '닭털 같은 나날'과 '기관', '1942년을 돌아보다', 이렇게 세 편의 중단편 소설이 수록돼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는데 이번 주에 소개하는 류전윈의 소설은 배꼽이 빠지도록 웃기면서도 비애스러우니 '대국민 배꼽분실 주의보'와 '눈물 홍수주의보'를 동시에 발동하는 바이다.

'닭털 같은 나날'은 한 평범한 직장인의 무료하고 지리멸렬한 일상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어느 정도로 지리멸렬한 일상이냐 하면, 주인공 린이라는 사내는 매일 새벽 값싼 두부를 사 먹기 위해서 국영 상점 앞에서 줄을 선다. 수도세를 아끼려고 수도꼭지를 가늘게 틀어놓는 꼼수를 부리다가 검침원에게 개망신을 당한다. 까다로운 아내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아내의 직장을 집 근처로 옮겨주려고 이곳저곳 아는 '백'을 동원해 뇌물을 쓰기도 한다. 하나뿐인 아이를 시설 좋은 유아원에 보내려고 동분서주하기도 한다.

여기서 잠깐, 중국에서는 공식적으로 자녀를 하나 이상 가질 수 없다. 동물의 번식욕 아니, 인간의 종족보존의 욕구를 통제하는 중국식 산아제한법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다시 소설로 돌아오자. 그런데 이 같은 일상의 문제에 닥칠 때마다 주인공 린은 가진 것 없고 연줄도 없는 자신의 초라한 처지에 직면하며 좌절하게 된다.

독자들은 주인공 린의 '찌질'한 궁상을 보면서 깊은 공감을 하게 될 것이다. 동지섣달 긴긴 밤에 난방비 한 푼 아끼려고 보일러 한번 화끈하게 때지 못하는, 한마디로 인생을 '찌질'하게 살아오고 있는 본 기자는 그랬다.

대다수 독자들도 그렇게 살아오지 않는가? 고기 집에 가서 꽃등심 한번 배 터지게 먹고 싶지만 고작 대패 삼겹살이나 돼지껍데기에 만족할 수밖에 없는 우리네 소시민의 일상 말이다.

사실, 본 기자가 류전윈의 <닭털 같은 나날>을 소개하려는 데에는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그저 무뇌아처럼 배꼽잡고 희희낙락하라는 것은 아니다.

이 소설집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소시민의 지리멸렬하고도 비참한 일상을 강렬하게 담아내고 있다. 또 무언가 잘못돼 있고, 모순적이며, 억압적인 인간사회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 즉 '골 때리는' 웃음 속에 슬픔이 있고, '이건 뭔 시추에이션'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 이면에 이 사회의 극명한 모순이 있다.

류전윈의 소설을 읽으며 글 쓰는 자의 책무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무릇 글이란 세상의 본질을 사람들의 피부에 와 닿게 알려주며 족집게 과외처럼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게 하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그러니까 끼리끼리만 아는 '방언'을 하지 말라는 얘기다.

/조혁신기자 chohs@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