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 대한민국의 바이오 간판 기업 ㈜셀트리온. 설립 10년만에 전세계 바이오 제약 업계에서 고유명사로 통하는 이 세계적 기업을 자신의 손으로 일으킨 서정진 회장이 인천 송도국제도시 본사 내 회사 CI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셀트리온은 14일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제인 라미케이드 바이오시밀러 임상 성공을 발표하고 내년 전세계 출시를 선언했다./박영권기자 pyk@itimes.co.kr


불황, 침체, 갈등, 위기, 혼란 …….

하루가 다르게 차가워지는 날씨보다 더 우리를 위축시키고 우울하게 하는 단어들이 언론과 매체를 도배하고 있는 요즘 을씨년스럽기만 한 분위기 속에 그래도 서민과 보통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성공 스토리는 나온다.

재벌 가문 출신이 독차지하다시피했던 대한민국 부호 리스트에 자신의 힘만으로 이름을 건 ㈜셀트리온의 서정진 회장(54)도 그런 스토리의 주인공 중 1인.

그는 전세계에 1천명 정도 밖에 없다는 10억 달러(1조1천억 원) 이상 자산 보유자들을 일컫는 빌리어네어(Billoonare) 클럽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우리나라 부호 순위를 매년 매겨 온 재벌닷컴이라는 회사의 최근 발표에서도 서 회장은 1조210억 원의 자산으로 대한민국 1조원 이상 자산가 25인 명단에 들기도 했다.

대우자동차 연구원이란 샐러리맨으로 사회 경력을 시작한 그가 어떻게 그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었을까?

강연 때마다 그가 강조한다는 기업가 정신과 도전에 대한 서 회장의 얘기를 들어봤다.


▲2000년에 연수구청 창업보육센터에서 2명이 사업을 시작했다고 들었다.

- 지금도 거기 가면 내가 있던 방이 있다. 벤처기업들에게 주는 작은 공간이었다. 둘이서 시작해 2002년 셀트리온이 생겨났고 많은 것들이 변했다.

젊은 친구들을 만나면 어떻게 성공을 했느냐 강연 좀 해 달라는 말을 많이 듣는데 나는 단지 기업 분야에서 성공한 것일 뿐이다.


▲그래도 좀 더 이야길 듣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다.

- 일을 일으키는 기업(企業)은 경영을 잘해 좋은 회사를 만드는 일이다. 경영은 자기 꿈을 실현시키려는 사람들끼리 모여 활발히 움직이는 일이고 따라서 원대한 꿈이 있어야 하며 그걸 실현시켜 가는 과정에서 각자가 성취감과 보람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중요한 게 현재 내가 어디 서 있는지를 생각하고 미래엔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갈지를 정하는 일이다. 현 위치는 냉정하게 미래는 합리적으로 보면 된다. 방법론은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상식을 따라가는 일이다. 쉬운 말이다. 하지마 쉽지 않다. 상식적 사고지만, 그걸 믿고 지키기가 어려운 일이다.


▲바이오 사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

- 창업 초기에 구체적인 사업 구상을 하기 위해 미국엘 갔었다. 적절한 사업 아이템은 찾아지지 않고 시간만 흘렀고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다 제약 시장 얘길 듣게 됐다. 2012년부터 향후 10년 내에 특허가 만료되는 바이오의약품이 9개 회사에 10종 있다는 거였다. 그래서 제약산업에 대해 알아봤고 뛰어들게 됐다.


▲그렇다면 이 산업의 특징은 뭔가.

- 지금까지 인류가 개발한 약의 종류는 모두 400개가 안되더라. 약명이 많을 뿐이었다. 그래서 새로 나오는 논문 양도 적다. 약도 생각보다 많지 않다. 나올 만한 약은 다 나왔다는 얘기다.


특히 이 업종은 규제기관에 모든 개발 정보가 신고되고 오픈돼 '스크린'이 가능하다. 특허는 끝나게 돼 있고 새 약은 웬만해선 나오질 않는다. 기술장벽이 높아 경쟁자는 별로 없는데 시장은 개방 경쟁으로 가게 돼 있다.

그렇다면 독점적 지위가 상실되는 제품을 바이오시밀러 복제약으로 더 싸게 공급할 수 있는 양산체제만 갖춘다면 승부해 볼 만한 사업 영역이란 결론이 나온다.


▲사실 아이디어나 아이템, 비전이 있어도 그것과 실제로 사업이 되게 하는 일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얘긴데.

- 바이오시밀러의 경우 임상에만 1천500억 원, 제품 품질 보증에 1천억 원, 운송능력 확인에 1천억 원 등 모두 3천500억 원이 든다. 그런데 그때 광고에서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에피소드가 한줄기 빛이 됐다. 미리 선주문을 받아 배도 아닌 조선소를 만들었다는 그 얘기 말이다.

'판권 리스' 아이디어가 그렇게 나왔다. 당시 2대 주주마저 투자를 거절하고 모두가 포기하려던 상황이었지만 난 '왠지 될 것 같다', '해 보자'는 생각이 있었다.

여직원과 같이 러시아로 날아가 그 나라 최대 제약사 오너를 만났다. '러시아 판권을 줄테니 돈 좀 내라', '개발되면 당신은 대박이고 안되면 당신은 투자한 만큼 손해다. 실패 시 내가 가진 것 만큼으로 책임을 지겠다'고 말하고 일어섰는데 다음날 점심 때 만나자는 연락이 오더라.

그 뒤 우리 회사는 봉이 김선달 식 장사, 대동강 물을 파는 비즈니스 모형이 생겨났다. 그렇게 해서 개발할 수 있었던 제품의 다국적 임상이 곧 종료된다. 내년이면 세계시장에 셀트리온 제품이 풀릴 것이다.


▲대단하다, 속된 말로 '맨 땅에 헤딩' 격인데.

- 이유와 어려움이 없는 곳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얘길 다른 버전으로 하면 누구나 변명과 핑곗거리가 있다는 말이 되고 그러면 세상엔 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안될 거라고 미리 생각하지 말고 부딪쳐 보는 게 중요하다. 인천서 안되는 일이 서울서 될 리 없고 세계에 먹힐 리 없잖겠나. 하지만 내가 있는 자리, 여건만으로도 성공을 할 수 있다면 그게 성공사례가 되고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이다.

은행도 정부도 주변도 그 누구도 돈을 안대준다고 하지만 불가능하다는 얘기, 못한다는 소리 너무 쉽게 입에 올리지 말자.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고 생각하는 건 딱 하나다. 끝까지 도전을 해 봤다는 것이다.


▲절박한 이야기들도 많았을 것 같다.

- 발 밑이 낭떠러지 같은 때가 얼마나 많았겠나. 실제로 차를 몰고 강으로 뛰어들다 무의식중에 겁이 나 미수에 그친 적이 있었는데 오히려 돌아나오다 사고로 죽을 뻔한 적이 있다. 15일 뒤에 굳은 결심으로 다시 죽으러 오자고 다짐하고 돌아오던 때가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

당시엔 들어올 돈은 없고 줄 돈만 많았다. 은행 문 여는 시간이 제일 싫었고 문 닫는 4시엔 마음이 낫더라. 그땐 하루 시간이 가는 속도가 때에 따라 달랐다. 어쨌든 그 때 돌아선 뒤 깨닫게 된 게 있다. 보름 뒤 죽기로 하고 나니 나 자신이 달라지더라.

법정 스님이 '목숨 끈을 내려놓으면 평화로워지고 해탈하게 된다'셨다던데 걱정과 고민이 다 사라지더라. 만나는 모든 분들께 고마웠고 죄송했고 감사했다.

그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했더니 그분들이 날 대하는 게 달라지고, 회사 일도 달라지더라.그때 이후 사업을 하면서 자기 실력, 능력으로만 되는 일은 없다는 걸 알았다. 내 경우엔 마음으로 고마움과 감사를 느끼고 상대를 사랑할 수 있었던 것. 그게 내 열쇠였다.


▲어렵고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젊은이와 기업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 '복 받을 행동을 해야 복을 받을 수 있다'는 성경 속 문구를 말씀드리고 싶다. 이웃을 사랑하고 싸우거나 남을 속이지 말고 양보하라는 지극히 평범한 가르침 안에 복을 받고 성공하기 위한 해법들이 들어 있다.

또 하나는 '확고한 꿈과 목적'이다. 하나의 목표를 갖고 꾸준히 나아간다면 성공한다. 사람들이 성공 못하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길로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장님들께는 기업은 리스크가 없다면 기업이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겠다. 누군가는 리스크를 져야 한다. 대신 자신의 정열로 그걸 헤지(회피)하고 매니지먼트(관리)하는 것이다.

다들 아는 얘기지만 현실적으로 어렵거나 안될 것 같은 것들에 길이 있다. 남이 가지 않는 길, 선생은 없지만 걸으면 길이 난다.

/송영휘기자 ywsong2002@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