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빈 얄롬 


 

   
 

독자들 안녕하신가? 지난주에는 오에 겐자부로의 장편소설 <동시대 게임>을 소개했는데, 본 기자 당연히 독자들께서 그 책을 벌써 읽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혹시 그 책을 읽었다면 정말 대단한 고급 독자다. 이번 주에도 지적이고 철학적인 소설 한 권을 소개하련다.
바로 어빈 얄롬의 <쇼펜하우어, 집단심리치료>라는 장편소설이다. 어빈 얄롬? 어디선가 들어본 듯하다. 본 기자, 언젠가 '책과 사람'에서 어빈 얄롬의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라는 소설을 소개했었다. 어째, 이제 기억나는가?
어쨌든 독자들의 기억을 상기시키는 차원에서 어빈 얄롬에 대해 다시 한번 짧게 소개한다. 어빈 얄롬은 현재 미국 스탠포드 의과대의 정신의학과 명예교수이자 심리치료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정신과 의사다.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 <카우치에 누워> 등의 소설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어빈 얄롬의 소설은 세계 20여 개국에서 번역 출간되었으며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는 1992년에 출간된 이후 스테디셀러로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가난하게 어린 시절을 보낸 탓에 그는 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닥치는 대로 독서를 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소설을좋아했고, 소설을 통해 많은 지혜를 얻었다. 그리고 소설을 쓰는 일이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섬세한 작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본 기자와 무척 비슷하다. 본 기자도 소년시절 도서관에 틀어박혀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고 지금 소설도 쓰고 있으니까 말이다.
참, 오늘도 사설이 길었다. 본격적으로 소설을 소개한다. 먼저 이 소설의 주인공은 심리치료의사 줄리어스 박사와 염세주의자 필립 두 사람이다.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죽음을 앞든 심리치료자 줄리어스는 자신의 인생과 직업을 뒤돌아보게 되다가 과거 20여 년 전에 치료에 실패한 환자 필립을 떠올리게 되고 그를 만나게 된다. 필립은 섹스 중독증 환자로 사람과 관계를 맺는 수단은 오로지 섹스뿐이었던 사내다. 필립이라는 사내는 부럽게도(?) 수백 명의 여자들과 관계를 맺은 사내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난 필립은 놀랍게도 철학적 상담자가 되어 있었다. 필립은 상담소 개업 자격을 얻기 위해 줄리어스에게 도움을 청하고 줄리어스는 필립이 집단 치료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도움을 주기로 약속한다.
이 소설의 백미는 염세주의자 철학자 쇼펜하우어를 옮겨 놓은 듯한 주인공 필립과 이러한 필립을 변화시키려는 또 다른 주인공 줄리어스의 칼날이 선 지적 공방을 통해 쇼펜하우어라는 대철학자의 삶과 사상을 흥미진진하게 엮고 있는 점이다. 즉 지난번에 소개했던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에서 브로이어 박사와 니체의 지적 공방으로 구성한 소설로 니체의 철학과 삶을 그려내고 있는 것과 같은 방식의 소설이랄 수 있다.
이 소설에는 우리에게는 생소한 집단치료가 등장한다. 정신적, 심리적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하나의 집단을 이뤄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고 질문과 토론을 하는 과정에서 삶을 회복하는 치료방법이다. 이 소설에는 심리치료자 줄리어스와 쇼펜하우어를 닮은 필립 외에도 6명의 치료집단원이 등장한다. 이들 6명의 인물도 각자 개성을 가진 캐릭터들이다. 이들은 줄리어스와 필립과 직접적인 지적 공방을 하기도 하고 자신의 과거와 치부를 드러내며 내면의 상처를 치유해 간다.
이 소설에서 독자들은 지독한 염세주의자 쇼펜하우어를 쏙 빼닮은 필립에게 무한정한 매력을 느낄 것이다. 필립의 고독과 고뇌, 궤변에 공감하기도 하며 반감을 갖기도 하게 된다. 존재의 중심점이 "여성에게 사정을 하는 그 순간"이라고 느끼며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맺지 못했던 절대고독자 필립은 과연 쇼펜하우어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결론은 독자들이 직접 책을 통해 확인하기 바란다.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와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어빈 얄롬의 또 다른 장편소설 <보다 냉정하게 보다 용기 있게>를 꼭 읽어보도록 해라. 각자 독립적인 작품이자만 3부작 연작이랄 수 있는 소설들이다. 본 기자도 다음번에는 <보다 냉정하게 보다 용기 있게>를 읽을 계획이다. 즐겁게 독서하시기를. 참, 책값 무지 비싸다는 점을 미리 알려둔다. 참고하시기를 … . /조혁신기자 chohs@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