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에 겐자부로


 

   
 

독자들 추석 연휴 잘 보내셨는가. 본 기자는 연휴 기간 동안 방구석에 콕 틀어박혀 독서삼매경에 빠졌다. 솔직히 털어놓자면 낮잠 삼매경에 취해 있었고 야밤에 책을 읽었다.
이번 '책과 사람'에서는 오랜만에 소설 한권을 소개하려고 한다. 바로 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일본의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의 <동시대 게임>이라는 장편소설이다. 사족을 달아두자면 이 소설 한국어판은 아쉽게도 절판되었다. 즉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없다는 소리다. 인터넷 서점에 접속하면 중고 책을 구할 수 있다. 초판 발행 당시 7천500원이었던 책값이 중고시장에서 더블로 폭등해 1만5천원에 거래되고 있다. 미리 말해두겠는데 결코 책값 아깝지 않은 책이니 소설 마니아라면 반드시 사보도록 해라.
그렇다면 본 기자는 이 책을 어떻게 구했는가 하면,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당시 싱가포르에서 반도체 딜러로 꽤나 돈을 잘 벌고 있던 '울 형아'(지난번 칼럼에 등장했던 사람이다. 87년 대선 때 DJ를 지지할 것인가 백기완 민중후보를 지지할 것인가로 말다툼을 벌이다가 동생인 본 기자에게 폭력을 휘두른 분이다.)가 한국에 출장 왔을 때 멋진 옷을 사주겠다고 했는데, 평소 지성이 넘치던 본 기자는 옷 대신에 책을 사달라고 해서 오에 겐자부로의 전집을 샀던 것이다.
오에 겐자부로에 대해 잠깐 소개하자. 오에 겐자부로는 1935년 일본 에히메현(愛媛縣)에서 태어나 도쿄대 불문학과를 졸업했다. 중편 '사육'으로 그 유명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1950년대 후반에서부터 이시하라 신타로와 함께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급부상했다. 1960년에는 일본의 젊은 작가를 대표해 마오쩌둥을 만났고 신좌파적인 사상에 기반을 둔 소설들을 발표했다. 지적 장애아 아들이 태어난 충격을 담은 <개인적인 체험>과 핵문제를 다룬 <핀치러너 조서>, 자연주의 철학에 기반을 둔 등 쇠망치처럼 묵직한 소설들을 발표했다. 물론 본 기자, 오에 겐자부로 선생의 전집을 구입했으니 그의 작품을 안 읽은 거 빼고 거의 모두 읽었다.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 세계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또 다른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백 년 동안의 고독>의 작가 마르께스가 마술적 리얼리즘의 세계를 펼치고 있는 것에 견주어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이라고 할 수 있겠다. 뭔 말인지는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찾아보도록 하시고. 자, 이제 줄거리를 요약하는 것부터 소설을 소개하기로 한다.
대일본제국 안의 독립된 소우주인 시코쿠 숲속 마을에 이 마을의 역사와 신화를 쓰는 운명을 타고난 '나' 쓰유키는 자신의 운명을 거스르려고 쌍둥이 누이인 쓰유미와 근친상간을 저지른다. 근친상간이라니! 정말 그로테스크(엽기적 혹은 괴기적) 하지 않은가? 소설은 화자인 '나'가 누이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진행된다. 과거에 누이와 관계되었던 엽기적인 사건들을 통해 시코구 숲속 마을의 참혹했던 역사와 괴기적인 신화가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것이다. 엄청난 서사이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판타지는 이 소설 앞에선 명함도 못 내민다.
오에 겐자부로는 이 소설에서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반제국주의와 반국가주의 세계관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원시림을 지키고 자연 속에서 소우주를 형성하고 있는 시코쿠 숲속 사람들의 국가와 문명과의 투쟁을 통해 자연주의 세계관을 어김없이 보여준다. 이 소설의 핵심이 바로 이거다!
누이에게 보내는 편지글 형식이기 때문에 도입부부터 중간까지 독서하는데 꽤나 인내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숲속 마을의 형성과 위기, 투쟁으로 치닫는 중간 이후부터는 스펙터클한 무협활극을 보는 듯하다. 거기에 일본제국주의 황군이 총칼과 대포로 숲속 마을을 침입하고 신화 속에만 존재했던 마을의 창건자들이 등장해 최후의 투쟁을 벌이는 장면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한마디로 무진장 재밌다는 얘기다.
책장을 덮었을 때, 독자들은 오에 겐자부로의 열렬 팬이 되어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쩌나. 오에 겐자부로의 전집은 더 이상 한국어판이 출판되지 않으니. 어쨌든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 읽기를 원하는 독자는 재빨리 본 기자에게 연락 주시라. 기꺼이 빌려드리겠다. 물론 워낙 귀한 책이다 보니 대여료를 받는다. 욕하지 마라. 나도 먹고 살아야지 않겠는가. /조혁신기자 chohs@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