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는 항일투사 유족들과 최고권력자의 근친들, 그리고 가까운 외척들이 국가의 특별보호를 받으며 거주하고 있는 지역이었다. 그래서 하루에도 몇 번씩 1호관리소 직원들이 나와서 가로등과 길가에 심어진 꽃나무들을 손질했다. 또 전화만 걸면 400여 명의 1호관리소 직원들이 집집마다 달려가 집안의 하수도 청소와 정원손질을 비롯해 옥내 전기배선작업, 가전제품 수리, 주택 개보수작업, 니스 칠과 페인트 도포작업, 보일러청소와 배관수리작업, 장판과 벽지 도배작업 같은 일들을 무보수로 해주고 돌아갔다.

 주부식물도 하루에 한번씩 냉동차들이 들어와서 상자뙈기로 내려주고 갔다. 쇠고기 닭고기 오리고기 같은 일반육류는 매일매일 공급되었고, 꿩고기·노루고기·개고기 같은 특수육류는 1주일에 한번씩 배달되었다. 북한에서 생산되는 사과와 배는 물론 외국에서 수입해 오는 귤과 바나나 같은 과일들도 집집마다 풍부하게 배달되었다.

 곽병룡 상좌는 큰집 대문 앞에 서 있던 냉동차가 떠나자 집안 일을 보는 아주머니의 안내를 받으며 현관으로 들어갔다. 마침 거실에 나와 있던 곽만수씨는 깜짝 놀라는 얼굴로 다가와 반겨 주었다.

 『이게 누구네?』

 『큰아버지, 저, 병룡입네다. 그 동안 별고 없었습네까?』

 곽병룡 상좌는 모자를 벗고 거실 바닥에 넙적 엎드려 큰절을 올렸다. 곽만수씨는 마지못해 거실에서 절을 받은 뒤 자기 방으로 조카를 안내했다.

 『앉아라. 너는 그 동안 어케 지냈느냐?』

 곽만수씨는 펴놓은 노동신문을 치우며 아랫목에 위엄을 차리고 앉아 집안 식구들의 안부를 물었다. 곽병룡 상좌는 어머니 소식을 비롯해 동생들의 근황을 차근차근 전해 주었다. 그리고 군에 가 있는 인구의 신변에 변고가 발생해 중앙당에 복무하는 동생을 만나러 평양에 왔다가 큰집에도 들리게 되었다는 이야기부터 꺼냈다. 말없이 집안소식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곽만수씨가 약간 놀라는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인구의 신변에 변고가 발생했다니…?』

 곽병룡 상좌는 봄에 발생한 화물자동차 전복사고 소식부터 시작해 인구가 남조선으로 넘어간 사연까지 밝혔다. 이야기를 다 들은 곽만수씨는 『우리 집안에서 어찌 그런 불행한 일이 일어날 수가 있는가?』 하고 잠시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큰아버지도 이제 일흔 일곱 살의 나이는 속일 수가 없구나….

 곽병룡 상좌는 드문드문 저승꽃이 피어오르는 큰아버지의 얼굴과 백발을 지켜보며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려보았다. 그때 곽만수씨가 눈을 뜨며 물었다.

 『길타면 남조선으로 넘어간 그 아이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도 못 들었겠구나?』

 『쭉 못 듣고 있다 어젯밤 병호네 집에서 녹음된 기자회견 목소리를 들었습네다.』

 『죽지는 않았다는 말이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