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스크 칼럼 ▧
   
 

남해에서 올라온 산벗·돌배나무들은 강화의 너른 갯벌에 파묻혔다. 30년~50년 정도 자라 굵기가 40cm 이상 되는 것들이었다. 3~4년간 숙성과 건조를 끝낸 나무들도 보였다. 전국에서 올라온 도편수들은 이런 나무들을 판각하기 좋은 결로 다듬었다. 필생들은 부처님 말씀인 '경·율·논'을 써내려 갔고, 각수들은 열심히 조각칼을 놀렸다. 그렇게 꼬박 16년. 팔만여장의 대장경판이 완성됐을 때 강화도는 섬 전체가 울음바다가 됐다. 760년전, 강화도에서의 팔만대장경 완성은 '인천의 힘'이었다.
오는 8월10일 '고려대장경과 강화도' 학술대회가 열린다. 고려 초조대장경 판각 1천년과 재조대장경 강화판당 봉안 760년을 기념하는 회의다. 대장경 판각을 총지휘한 대장도감, 대장경을 보관했던 대장경판당과 선원사, 대장경판의 해인사 이전 경위, 이날 회의에선 강화도와 고려대장경의 관계를 집중 논의하게 된다. 이를 위해 전국의 학자와 전문가들이 강화도를 찾을 예정이다.
고려대장경과 강화도의 연관성을 심도있게 논의하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새얼문화재단은 인천시 문화재위원회와 함께 지난 2001년 '고려 팔만대장경과 강화도'란 주제로 학술심포지엄을 열었다. 당시 논의된 내용들은 학술적 가치가 높은 것들이었음은 물론, 팔만대장경이 강화도에서 태동한 것을 의제설정함으로써 인천사람들에게 역사·문화적 자긍심을 심어주었다.
10년 전 그랬듯이, 이번 학술회의는 대장경과 강화도에 대한 연구성과를 확장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더 중요한 것은 이번 회의가 인천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작업이 될 것이란 사실이다. 자학이나 비꼬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인천의 정체성이 흐릿하고 애향심이 부족한 도시라고 말한다. 그 이유를 외지인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인천뿐 아니라 서울, 경기 등 수도권은 어차피 전국 방방곡곡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일 수밖에 없다. 사실, 인천만큼 정체성이 뚜렷하고 자존심 강한 도시도 드물다.
인천은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물을 빚어냈으며 우현 고유섭, 죽산 조봉암과 같은 큰 인물을 배출했다. 지역의 발전과 시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라면 때로 중앙정부와도 과감히 맞섰다. '세종'이라고 이름지으려 했던 국제공항 명칭을 '인천'국제공항으로 바꾸었고, 인천대교 주경간폭을 100m나 늘려 인천 앞바다를 오가는 선박들의 안전을 확보했다. 새얼문화재단처럼 오피니언 리더들과 시민들의 높은 자발적 참여 속, 민간이 주도가 돼 애향심의 구심점이자 지역발전 견인차 역할을 하는 예는 전국 어느 도시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것들이 바로 인천의 힘이고 정체성이며, 외지사람들에겐 '짠물'로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다.
지난 2004·2005년, 기자가 칸국제영화제를 취재하러 프랑스에 갔을 때 1등급 프레스카드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순전히 제호가 '인천'일보였기 때문이었다. 칸국제영화제조직위는 매체에 따라 4~6등급으로 구분해 각기 다른 프레스카드를 나눠준다. 그런데 처음 취재를 간 기자가 "I'm a Incheon Daily News Reporter"(인천일보 기자입니다)란 사실을 증명하자 선뜻 1등급 프레스카드를 발급해 준 것이다. 그 때 전국지와 잘 알려진 영화잡지기자, 영화평론가들의 "헉! 인천일보가…"라며 놀라던 낯빛은 지금도 생생하다.
조직위는 세계적 공항을 가진 인구 270만의 도시에서 '인천'이란 이름으로 발행되는 일간신문이라면 상당한 권위지일 것이라고 인식했던 것이다. 그 광경을 목격한 한 영화평론가는 이후 인천일보 동의 아래, 지금까지도 매년 인천일보기자로 1등급 프레스카드를 받아 취재하고 있기도 하다.
강화역사박물관에서 열릴 '고려대장경 강화도' 학술대회는 역사·문화 도시 인천의 '힘'과 '정체성'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유의미한 행사가 될 것이라 믿는다.
/김진국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