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 (43) 4부. 꽃은, 죽은 나무들의 마지막 폭죽놀이
탱고 (43) 4부. 꽃은, 죽은 나무들의 마지막 폭죽놀이
  • 김진국
  • 승인 2011.07.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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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에게 여자, 여자에게 남자는 무엇일까요. 흔히 말하는 있으면 귀찮고 없으면 아쉬운 존재라고 말하고 싶진 않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칵테일입니다. 서로 다른 술이 합해 멋진 맛을 만들어내는 그, 칵테일 말입니다. 비오는 날 마시는 칵테일은 더 센치한 법이지요. 그런데 그 칵테일을 마시고 싸우는 건 왜 일까요? 역시 남자와 여자는 영원히 알 수 없는 관계입니다. 2011 김충순, 켄트지 290x210㎜, 연필, 수채.


다다의 휴대전화는 자동 로밍 되어 있지만,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한국에서 전화를 건 상대방의 연락처가 뜨질 않는다. 다다는 본인이 직접 전화를 할 때만 휴대전화를 이용했고 문자 수신과 발신용으로만 사용하고 있었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는 적은 없었다. 한국에서 전화를 걸었다면 받는 사람 역시 수신료를 내야 했기 때문에 그 부담이 상당히 컸던 것이다. 아주 특별하게 아르헨티나 현지에서 걸려온 전화들은 받았다. 그것은 수신자 부담이 아니니까.

초이의 전화를 받은 것은 그래서였다. 즉, 다다는 초이가 전화를 한 줄 모르고 아르헨티나 현지에서 걸려온 휴대전화 번호가 액정 화면에 떴기 때문에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초이었다.

"잘 지냈어요?"
초이는 다다보다 어린 나이지만 같이 자고난 후에는 늘 존칭을 하지 않았다. 박 부장의 죽음과 또 한 달간 연락이 끊어졌기 때문인지 초이답지않게 다다에게 존댓말을 썼다. 어색했다.
"어디야? 잘 지내?"
다다가 할 수 있는 말은 고작 그런거였다. 전화기에 대고 박 부장 죽음의 진실이 무엇인지, 그날밤 너는 왜 내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는지, 왜 세 사람이 함께 침대 위에 올라가는 이상한 상황이 연출되었는지, 그것이 혹시 의도된 것이었는지, 그동안 궁금했던 사항들을 전화기에 대고 물을 수는 없었다.

"네. 저는 잘 지내요. 라우라 언니도 잘 지내죠?"
"응. 우린 매일 만나는데 뭘. 만나서 초이얘기 해. 어디야? 만나자. 만나서 얘기해야지"
"저 아직 부에노스에 있어요"
"응. 그건 알아. 얼마전에 지우님한테 들었어. 부에노스 어디에 있는거야? 왜 안나타나?"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요"
초이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다다는 괜히 마음이 아팠다. 그녀가 겪고 있을 어떤 고통이 그에게도 전해져왔다. 무엇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녀가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한국 안 가? 여기 계속 있을거야?"
"만나서 얘기해요"
초이는 약속장소를 정했다. 그런데 그곳이 엉뚱하게도 레꼴레따 묘지의 에비타 묘소 앞이었다.
"다른데서 만나면 안될까?"
다다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결국 입 밖으로 말하지는 못했다. 마침 다다는 어젯밤 밀롱가를 다녀온 후 늦잠을 자고 일어난 직후였다. 어쩌면 초이는 그것까지 계산에 넣고 전화를 했을 것이다.

초이는 부에노스 현지에서 구입한 휴대전화를 쓰고 있었다. 그전에는 다다처럼 한국에서 자동 로밍한 휴대전화였다. 초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오후 3시의 레꼴레따 묘지는 언제나 관광객들로 가득 찬다.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방문한 관광객들이 빠지지 않고 찾아오는 공간이 바로 레꼴레따 묘지였다.

에비타 묘소는 너무나 유명하기 때문에 쉽게 찾아갈 수가 있다. 묘소 자체는 크지 않다. 대부분 화장을 하고 그 유골만 안치된 일종의 납골당이기 때문에 각각의 묘소 면적은 아주 작다. 하지만 재력가들은 넓은 면적을 분양 받아서 화려하게 꾸미기도 한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후손들이 죽은 사람의 묘소를 얼마나 잘 치장하는가에 따라서 재력이나 사회적 신분의 차이가 드러나기 때문에 심혈을 기울여서 묘지를 치장한다. 따라서 가장 부유층이 묻혀 있는 레꼴레따 묘지는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들로 가득 넘쳐나는 공간이었다.

각각의 묘소들은 전혀 다른 디자인과 재료를 사용하여 묘지를 꾸민 후손들의 취향에 맞게 구성되어 있다. 고급 대리석은 기본이고 화려하고 섬세한 장식의 예술적 조각들이 많이 갖춰져 있다.

에비타는 아르헨티나 페론 대통령의 부인이었고 한때 아르헨티나의 상징이기도 했지만 그녀의 묘소는 에비타 친정쪽의 가족묘에 함께 안장되어 있다. 독립적으로 묘소가 구성된 것이 아니라 가족묘 속에 그녀의 유골이 들어있는 것이다. 묘소 면적도 다른 일반 묘소들과 차이가 없고, 오히려 초라하고 볼품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다. 뮤지컬 에비타를 통해 전세계인들에게 알려진 그 지명도를 생각하면, 너무나 초라한 것이다.

왜 초이는 부에노스아이레스 그 많은 공간 중에서도 에비타 묘지에서 만나자고 한 것일까? 다다는 약속시간에 맞춰 레꼴레따 묘지로 향하면서도 떠오르는 의문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에비타 묘지가 있는 좁은 도로는 텅비어 있었다. 그 많은 단체 관광객들도 보이지 않았다. 가슴에 단체 관광객 식별을 할 수 있는 각종 마크나 표지를 달고 있는 관광객들은 적게는 5~6명부터 많게는 20~30명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에비타 묘지 앞에 서 있는 것이 레꼴레따 묘지의 풍경이었다. 조금 전 관광객들이 다녀갔는지, 아직 시들지 않은 꽃들이 놓여 있었다.

다다는 에비타 묘소로 들어가는 비좁은 도로가 잘 보이는 곳의 그늘진 곳에 서서 초이를 기다렸다. 초이는 오지 않았다. 30분이 지났다. 그런데도 초이는 오지 않았다. 다다는 아침에 자신에게 걸려온 휴대전화 번호로 전화를 했다. 그런데 받지 않았다. 초이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그곳에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약속시간에서 거의 한 시간이 다 지날 무렵, 한 청년이 다가왔다. 콧수염을 기르고 키가 175㎝ 정도되는 전형적인 쁘르떼뇨 차림이었다. 그가 다다에게 다가오는 순간, 다다는 직감적으로 그 남자가 초이와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이미 30분 전부터 그 남자는 에비타 묘소 근처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남자는 에비타 묘소 앞에 있다가 북쪽 방향의 묘소들을 둘러보다가 다시 에비타 묘소로 왔다가 또 다시 남쪽 방향 다른 묘소들을 둘러보곤 했다. 그러면서도 자주, 다다를 의식해서 바라보곤 했다. 다다가 서 있는 이쪽저쪽을 살펴보았다.

처음에는 특별히 눈에 띄는 행동이 없었기 때문에, 다다는 주의하지 않았지만 곧 그 남자의 모든 행동이 이상하게 보였다. 만약 그 남자가 자신에게 다가오지 않았다면 그 남자에게 다가가 도대체 왜 나를 그렇게 살펴보느냐고 물을 참이었다.

남자는 다다에게 다가와, 당신이 코리안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다다는 대답했다. 그 청년은 아무 말없이 손에 들고 있던 서류 봉투를 다다에게 전해주고 걸어가버렸다. 붙잡아서 자세한 것을 묻고 싶었지만, 그 청년은 어느새 다다의 눈앞에서 사라져버렸다.

서류 봉투는 단단하게 밀봉되어 있었다. 다다는 그 자리에 서서 봉투를 뜯어 보았다. 봉투 안에는 A4 100장 정도의 두툼한 하얀 종이가 인쇄되어 있었다. 한글로 된 인쇄물이었다. 맨 앞장에는 커다랗게 'TANGO' 이렇게 쓰여 있었다.

다다는 첫 페이지를 훑어보았다. 그냥 평범한 글이었다. 이렇게 묘지 앞에 서서 읽을 수 있는 글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곧바로 그 인쇄물들을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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