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유일 소방공무원 신효근 소방사
   
 


연무로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고요의 섬 연평도. 그날의 상처를 가리려는 듯 바다안개로 가득 들어찬 연평도에 안개보다 차디 찬 기운이 감돈다. 지난해 북한 무력 도발이 앗아간 평화의 섬 연평도에 얼마 지나지 않은 아득한 옛 모습들이 눈 앞에 선하다.

바닷가 근처를 제 집 앞마당 삼아 재잘거리며 뛰놀던 아이들의 웃음소리. 물 때에 맞춰 모인 어르신들의 '탁 탁' 굴 따는 소리. 멀리 들려오는 뱃고동 소리와 가슴이 시릴 정도로 밀려오던 청량한 파도소리가 이젠 먼 나라 얘기가 됐다. 충격과 공포의 상징인 포탄흔적을 남겨둔 채 마을을 빠져나간 주민들. 깨지고 무너져 내린 집로 황량한 마을. 전쟁터와 다름 없던 이 고독의 섬을 지키는 사람이 있다.

연평도에 유일한 소방공무원 신효근(39) 소방사.

"나고 자란 고향이자 제 꿈을 이룬 곳입니다. 죽어도 이 곳을 떠날 수 없죠. 전 평생 이 섬을 지켜나가렵니다." 떠올리기 싫은 그날의 아픔이 아직도 그를 괴롭히지만 상처를 가득 안고 외로이 서있는 섬을 떠날 수 없다. 아픈 상처와 흔적을 보듬어 다시금 안전과 평화의 상징 연평도로 만들려고 그는 새벽같이 마을로 나선다.

새해들어 하루도 쉰 날이 없다. 연평도에 살면서 그 곳만 전담해 일을 도맡은 소방공무원이 그 뿐이기 때문이다.연평도 포격 이후에는 중부소방서 소방공무원들이 5명씩 지원을 오고 있다. 하지만 섬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대원은 그 하나다. 또 그와 함께 섬을 지키던 의용소방대원들은 32명이 있었지만 다들 섬을 빠져나가 지금은 5명 남짓. 일 손 부족은 하루 이틀 얘기가 아니다.

연일 한파로 보일러와 수도가 얼어터지기는 연평도도 마찬가지다. 거기에 먹는 물도 부족한 상황이다. 급수지원에 고장난 보일러를 손 보고 상수도를 녹일 물을 실어 나르길 수차례. 마을 몇 바퀴를 돌면 금방 하루가 간다.

"사람들이 없어 일 할 맛이 안나죠. 그 전엔 따뜻한 커피라도 얻어 마시는 재미가 있었는데… 그리워요."

일이 힘드냐는 질문에 돌아온 답이다. 힘들다기 보단 외로운 심정을 커피가 그립다며 에둘러 표현한다.

자리에 앉아서 잠시 한숨을 돌리려자 휴대전화가 울린다. 또다시 급수 지원이다. 소방차에 물을 가득 받을 틈도 없다. 지원을 또 한 차례 다녀온 뒤에야 그는 오랜 기억을 더듬었다.
 

   
▲ 지난해 포격으로 불이 붙은 배에 신효근(오른쪽) 소방사와 대원들이 달려들어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제공=인천중부소방서


어릴적부터 그의 꿈은 소방대원이었다. 하지만 섬에서 학교를 마치고 바로 인천에서 취업을 했던 터라 그는 꿈을 서랍속에 미뤄둬야 했다.

뭍 생활을 하고있던 어느날. 연평도에서 소방 대원 기능직 직원을 뽑는다는 말에 지원을 했다. 그는 단번에 합격했다. 연평도라 지원자가 없었을 뿐더러 그가 나고 자란 곳이어서 더욱 점수를 높이 샀다.

마침내 오랜 꿈을 이룬 1998년 10월 그는 금의환향했다.

그렇게 고향을 지키다 보니 어느 덧 10년. 그는 지난 2009년 6월에 정식 소방공무원으로 임용됐다.

그런 행복이 오래 가지 않았다. 지난해 평화의 섬 연평도에 전쟁의 포소리가 가득 찼다.

"자다가 깜짝 놀라며 깨기 일쑤"라며 "그냥 큰 소리만 나도 심장이 두근 거린다"고 말했다. 아직 끔찍했던 그날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쾅!'. '뻥!'. 다른 날과는 사뭇 다른 소리에 밖으로 뛰쳐 나가자 포탄이 근처 해양경찰서 연평출장소 건물 뒤로 떨어지는 걸 지켜봐야 했다.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고 한다. 이내 정신을 차려 건물로 들어와 119에 전화를 걸었다.

"연평도로 포탄이 날아드니 사람들을 대피시킬 수 있게 안내방송을 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한참이 지나 방송이 나오자 그는 차를 타고 마을로 나가 주민들을 대피소로 실어날랐다.

"지금에야 말인데, 그때는 우리 가족도 생각이 안나더라고요. 대피소에 사람들을 보내고 불을 끄러 나가는데 그때서야 우리가족들은 잘 피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참 미안하죠"라고 말했다.

바로 불을 끄러 불 붙은 건물과 산을 뛰어 다녔다. 보건소 건물에 불을 끄고 있는데 머리 위로 포탄이 스치듯 지나갔다.

"정말 아찔했어요. 2차 폭격이 시작 됐죠. 귀를 막고 웅크려 앉아서 한참을 기다렸어요."

얼마나 지났을까. "2차 폭격이 끝난 뒤 고개를 들어 마을을 살피자 아비규환,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죠."

 

   
 

그는 다시 일어나 마을 불을 진화하러 나섰다. 의용소방대원들과 뛰고 또 뛰었다. 몇몇은 마을로, 그는 산으로 향했다. 다음날까지 밥 한끼 물 한모금 넘기지 못한채 그는 24시간 내내 뛰며 불을 껐다. 가족들이 섬을 빠져 나가는 모습도 생각도 하지 못했다. 많은 소방대원들이 지원을 들어오는 모습도 그는 보지 못한채 불 끄기에 매달렸다.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터가 이런 곳이구나 했죠"라며 "당시에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아직도 정신없고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 기억이 안나요"라고 고개를 내저었다.

악몽같은 시간을 보낸 그는 지금 가족 모두 뭍에 내보내고 홀로 섬을 지키는 파수꾼으로 남았다.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여기 살겁니다. 노부모와 토끼같은 아이들, 곱디 고운 아내를 지키는 방법이죠. 섬을 지키는 것이…."

죽어도 섬에서 죽고 살아도 섬에서 살겠다는 그. 정년을 마친 후에도 영원한 연평 소방대원으로 남겠다고 다짐했다. /연평도=조현미기자 ssenmi@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