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환 사회부 기자


 

   
 

2001년 3월. 인하대 후문에선 매캐한 최루가스 속에 학생과 전경이 대치 중이었다. 한 달 전 대우자동차 대량해고에 학생들이 거리시위를 나서려 하자 경찰이 이를 봉쇄하려 한 것이다.
기자도 학생 시위대에 섞여 현장에 있었다. 긴박했던 대치 상황이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 대우차는 1천750명을 일시에 정리해고 했다. 1996년 12월 정리해고를 '합법화'한 노동법 개정 후 전국 최대 규모의 해고 사태였다.
그랬던 부평벌에서 10년 세월을 넘어 다시 대량 정리해고가 예고되고 있다.
1993년 대우차에서 분리된 (주)대우자동차판매에서 380여명의 정리해고 절차가 진행 중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정리해고의 명분은 '경영상의 이유'다. 법에도 똑같은 문구로 표현돼 있다. 경영상의 이유, 회사가 어렵다는 얘기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회사는 '갑'이고 직원은 '을'이다. 사람을 쓸 지 말 지는 궁극적으로 회사가 결정하게 돼 있다. 경영이 어렵다는 데 무작정 고용을 유지하라고 요구하긴 어려운 이유다. 그래서 '경영난→정리해고'의 도식이 성립된다. 하지만 그동안 정리해고를 둘러싼 논의에서 '그럼 경영이 왜 어려워졌는가', '경영 부실을 사전에 막을 방법은 없나'하는 얘기는 많지 않았다.
자동차 판매와 건설의 두 부문을 가진 대우자판은 건설부문의 무리한 사업확장이 지난해 워크아웃과 최근 정리해고의 근원이 됐다. 비교적 현금유동성이 좋은 판매 부문이 건설 쪽의 부실을 메워오다 GM대우의 판권 해지를 계기로 한계에 부딪쳤고 결국 워크아웃과 회사분리, 정리해고로 이어진 것이다.
대우자판 노조 김진필 위원장은 "노동조합을 비롯한 직원들의 경영참여가 법·제도적으로 가능했다면 건설부문 부실을 어느 정도는 막을 수 있었다. 경영참여가 능사는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경영실패의 책임이 직원들에게 전가되는 상황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기업의 한 순간 잘못된 판단은 많은 직원들의 '밥줄'과 직결된다. 노동자의 경영참여 법제화를 비롯해 부실경영의 사회적 안전장치를 만드는 논의는 이미 늦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