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개봉 … 이중청부살인에 휘말린 조선족 남자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받은 '황해'가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나홍진 감독과 배우 김윤석·하정우의 조합은 관객으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추격자'를 떠오르게 한다. 세 명은 2007년 개봉한 전작에서 5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스릴러의 새 장을 열었다'고 평가받았다. 이후 3년 만에 재회한 이들을 두고 많은 영화 관계자들은 '추격자 2'라는 타이틀을 붙이며 기대감을 나타냈고, 동시에 비슷한 종류의 영화가 되지 않을까라는 걱정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세간의 우려를 기우에 그치게 했다. 22일 개봉한 황해는 추격자보다 훨씬 큰 스케일과 빠른 전개, 묵직한 중량감을 선보인다.
 

   
 


게다가 감독과 배우만 같을 뿐 전혀 다른 이야기로 다가온다. 섬뜩하리만큼 잔인한 사이코패스로 등장했던 하정우는 피폐하고 고단한 삶을 살다가 결국 파멸하는 비운의 조선족 구남으로 다시 태어난다. 돈을 벌기 위해 한국으로 간 아내는 6개월째 소식이 끊겼고, 여비 마련으로 빌린 돈 6만 위안(1천여만원)은 그의 삶을 압박해 온다. 일확천금을 노리고 마작에까지 손을 대지만 빚은 늘어만 간다. 결국 빚 해결과 아내를 찾겠다는 2가지 희망을 안고 살인청부를 수락, 황해를 건너지만 그를 기다리는 운명은 더욱 비참하다.

추격자에서 타락한 형사로 연쇄살인범을 쫓아 사투를 벌였던 김윤석도 돈 되는 일이면 무엇이든 하는 냉혹한 청부살인 브로커 면가로 변신했다. 그는 구남을 한국으로 보내지만 살인의 증거를 없애기 위해 구남의 뒤를 쫓는다.

영화는 구남과 면가의 만남, 청부살인 계획, 한국으로의 밀항, 배신, 추격 등을 2시간의 러닝타임동안 자세하면서도 빠르고 생생하게 이어간다. 이들의 행보를 따라 카메라 역시 중국의 하얼빈, 치치하얼, 연길을 지나 한국의 부산, 서울, 인천, 울산 등을 숨 가쁘게 담아낸다. 특히 구남의 살인계획이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어긋나면서 이야기는 더욱 탄력을 받는다. 단지 가족과 행복하게 사는 소박한 꿈이 전부였던 구남은 면가와 경찰, 살인사건의 또 다른 배후 태원(조성하)의 추격을 필사적으로 따돌린다.

모든 면에서 관객을 압도하던 영화는 역설적이게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이 추격전에서 외려 살짝 실망감을 준다. 올해 하반기 극장가를 피바람으로 몰아넣던 '악마를 보았다', '아저씨', '김복남 살인사건' 등과 별다른 차이 없이 스크린은 또 한 번 피칠갑 된다. 칼과 도끼 같은 기존 '무기'에 먹다만 '개뼈'까지 동원하며 시뻘건 피와 살점을 튀기는 잔혹한 장면연출은 인물들의 냉혹함과 처절한 파멸을 위해 준비한 장면이라고 해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또 배우들의 조선족 연기와 밀항 과정 같은 사실감 넘치는 장면과 달리 구남의 도망자 모습은 다시 '영화'라는 느낌이 진하다. 팔에 총을 맞고, 칼에 여기저기를 찔리면서도 구남은 잠깐 주춤할 뿐 초인의 모습으로 빠르게 달아난다. 검문에 걸리면서도 경찰을 따돌리고 인천에서 울산까지 무사히 도착하는 그의 능력은 신기에 가까울 정도다.

그러나 제작기간 300일·170회차 촬영·5천여 컷이란 놀라운 기록 만큼 현란한 영상은 확실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특히 부산의 한 도로에서 촬영한 자동차 추격신은 50여대의 차 중 20대를 폐차시킬 만큼 격렬하다. 13대의 카메라를 동원해 찍은 이 장면은 숨 막히는 긴장감을 선사한다. 156분. 청소년 관람불가.

/심영주기자 yjshim@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