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일 감독 데뷔작'카페 느와르'30일 개봉


198분, 2시간 78분, 3시간 18분. 모두 같은 시간이다.

같은 길이의 시간이지만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체감되며 부르는 방식도 바뀐다. 또 한편으론 어떻게 부르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기도 한다.
 

   
 


이처럼 무언가 다르게 느끼고 정의하거나 혹은, 정의해서 다르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영화비평가 정성일이 메가폰을 잡았다. 30일 개봉하는 '카페 느와르'는 그의 데뷔작이다.

자신의 첫 영화에서 정성일 감독은 매우 독특하고 특별한 자신만의 '세상보기'를 마음껏 시도한다. 판타지나 액션 장르도 힘들다는 3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은 차치하고도 낯섦과 익숙함, 자연스러움과 부자연스러움, 흑백화면의 전환, 현실과 꿈의 혼동 등 영화는 여러 가지 면에서 기존 영화들과 다르다.

특히 정 감독은 이야기의 큰 줄기를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야'에서 찾았지만 이를 '영화화'하지 않는다. 연극의 장면처럼 책을 그대로 영상으로 만들어 내는 방법을 택했다. 이 사실을 선전포고라도 하듯 '세계소년소녀교양문학전집'이란 한자를 영화의 시작에 내세운다.

배우들의 대사는 절반 이상이 '~하였습니까?', '~이지요',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요' 등의 문어체다. 화면도 마치 책장을 보듯 글자들이 적힌 종이만 크게 확대돼 보이거나 아예 꺼진 상태에서 내레이션만 들리는 장면이 수시로 나타난다. 당황스러울 만큼 낯선 영화의 진행은 그러나, 중반정도가 지나면 그 의도가 점차 확실하게 전해진다.

'책의 리얼리즘'을 표방한 카페느와르는 2편의 책이 영상을 통해 어떤 방식으로 살아나는지 확인한다. 늘 눈으로만 보던 글자들이 실제 인간의 입을 통해 표현되는 것을 지켜보며 마치 책을 읽으며 상상했던 머릿속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모티브는 서양의 고전에서 가져왔지만 영화의 배경은 2000년대 서울이다. 카메라는 남산, 세종로, 남대문 재건현장, 덕수궁 등을 비춘다. 특히 끝없이 펼쳐지는 청계천의 낡은 상가들과 시장, 그 끝에 등장하는 60년대 청계천의 사진은 우리에게 전근대의 기억을 교차시키며 어떤 추억과 상징을 상기시킨다.

길고 긴 상영시간 동안 '올드보이', '괴물', '극장전', '살인의 추억' 등 최근 10여 년 사이 화제를 모았던 한국영화들이 대사나 장면으로 직·간접적 언급된다. 또 '빨간풍선'이나 '주말'의 특정부분을 인용하기도 하고, '친애하는 당신'처럼 제목, 배우이름이 나타나는 인트로 장면을 영화 중반에 삽입시키는 등 영화 전반에 걸쳐 다양한 기존 작품들의 색채를 느낄 수 있다.

정 감독은 하늘의 별들이 하나가 아닌 선이 그어졌을 때 별자리가 되고 성격을 지니는 것처럼 인용된 작품들을 영화 속에서 하나의 선으로 그으며 나름의 질서를 형성,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영화는 내용상 1부와 2부로 나뉜다. 학교 선생님인 영수(신하균)는 반 학생의 엄마 미연(문정희)과 운명적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남편과 헤어질 수 없었던 미연에게 버림받고 괴로워한다. 그리곤 새로운 흐름으로 진행되는 2부에서 늘 청계천을 거닐며 떠나간 연인을 기다리는 선화(정유미)를 만나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다. 지난해 열린 '제66회 베니스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다. 198분. 19세 이상.

/심영주기자 yjshim@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