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인천 서구 녹청자도요지는 조상들의 도예발자취가 담긴 사료의 요충지다. 그래서 그곳을 관리하는 사료관장이 전문가여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최근 이 자리에 도예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퇴직공무원을 내정하자 예술계가 반발하는 등 논란을 빚고 있다. 녹청자도요지 사료관장은 결코 행정만 해서는 안된다. 조상의 기예가 담긴 예술적 요소의 탐구와 사료 연구를 필요로 하는 자리이기에 의혹이 불거지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가 된 서구 녹청자도요지사료관은 서구문화원이 운영하고 있지만 관장 임용은 구청장 승인 사항이라 한다. 지난 1일 서구문화원이 '서구 녹청자도요지 사료관 관장 모집 공고'를 낸 결과, 구의회 사무처장 출신인 행정직 공무원 A씨를 비롯해 교장 1명과 예술계 인사 3명이 응모했다. 그러나 관장으로 지난 25일 명예퇴직을 신청한 A씨가 결정된 것과 때를 같이 해, 같은 날 구가 '서구 녹청자도요지 사료관 설치 및 운영 조례 시행규칙'을 공포하자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누가 봐도 관련 시행규칙이 나오기도 전에 이미 채용절차를 밟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채용결정공고, 명예퇴직, 시행규칙 공포가 같은 날 하루만에 일사천리로 처리된 것은 촌극과 다를 바 없다.
문화예술 분야는 정치로부터 독립되어야 하고 자율성이 보장돼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특히 이를 위해서는 관련 기관장의 채용 심사가 체계적이고 투명해야 한다. 서구 문화원의 이번 사료관장 채용은 지역문화예술의 정체성을 훼손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방자치단체의 자기 사람 심기 행각이 예술계에도 손을 뻗고 있다"는 한 도예가의 볼멘소리나 "공무원들이 자리를 가져 갔다면 문제가 크다"며 "도예전문가로 관장 공모 절차를 다시 해야 한다"는 이진숙 인천현대도예가회 회장의 지적은 설득력을 주기에 충분하다.
구청장 승인 사항이라고 해서 공무원 출신을 채용했다면 지역문화예술은 희망이 없다. 관 주도의 문화예술 행정 간섭은 전문가들의 진취적 갈증을 해소할 수 없다는 사실을 유념해 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