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나들길을 걷다//


인천 강화나들길은 생태공간과 전통문화를 한데 아우른 공간이다. 섬 전체에 숨어있는 옛길을 따라 걷다보면 강화의 문화와 역사가 저절로 몸에 밴다. 강화나들길은 현재 역사문화와 호국돈대, 능묘, 해지는 마을 길 등 4개 구간과 고비고개, 화남생가, 갯벌 및 철새보러 가는 길 등 총 8개 구간(127.5㎞)이다. 이곳만 걸어봐도 강화도를 알차게 둘러보는 셈. 이런 가운데 강화군은 오는 2013년까지 강화도 전역을 잇는 12개 나들길을 더 만들 계획이다.
 

   
▲ 강화나들길은 옛 마을이 자리잡은 골목길과 생태공간, 전통문화를 한데 어우른 공간이다. 사람들이 이 곳을 한반도의 축소판이라 부르는 이유다.

본보는 창간 스물 두돌을 맞아 기자들이 직접 체험한 '강화 나들길을 걷다'를 세차례에 걸쳐 싣는다.



1코스 '심도역사문화 길'(용흥궁~강화역사관·13㎞)

14일 오전 8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용흥궁공원 정문. 강화나들길로 들어서는 방향을 알려주는 푯말이 곧장 눈에 띈다. 그런데 바로 앞 강화문학관과 오른편 용흥궁이 동시에 손짓을 보낸다. 낯선 방문객을 유혹하는 첫 볼거리자 고민거리다. 그러나 갈등도 잠시, 가을 햇살 속으로 유독 빛나는 용흥궁이 발걸음을 먼저 끌어 당긴다. 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 머물렀다던 용흥궁은 생각보다 아담하다.

이곳을 한번 둘러본 뒤 옛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는 담장을 따라 바로 올라가면 우리나라 최초의 성당인 강화읍성공회성당이 왼편에 둥지를 틀고 있다. 여기서부터가 진짜 첫째 길이다.

5분 정도 걸으면 낮은 지붕으로 덮힌 집과 고구마와 배추, 감자를 심어 놓은 텃밭이 있는데 마치 동화에나 나올 법한 신비의 마을같다. 담벽도 지붕도 나지막한 오래된 집들이 손바닥만한 창들을 달고 이어진다.
 

   
▲ 강화나들길 2코스는 자전거로 해안도로 일대를 돌며 문화유적지를 돌아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이곳에서 10분쯤 지나면 갈림길이 나오고 그 앞 전봇대에 걸린 파란색 푯말(북문길 42번)이 북문을 가리킨다.

꼬불꼬불 이어진 골목길 때문에 헤맬 것 같아도 담벼락과 바닥에 방향을 알리는 분홍색 화살표가 곳곳에 있어 길 찾기가 참 쉽다.

시골마을을 눈동자에 담으며 10분간 더 걸으면 북문을 지나 고려의 궁궐터인 고려궁지가 나온다.

이곳엔 매점과 그늘 쉼터가 있어 쉬어가기 좋고 680년된 은행나무 등 고목도 눈에 띈다.
 

   
▲ 화도돈대


고려궁지를 왼쪽에 끼고 좀 더 발걸음을 옮기면 북관운묘(문화사적지)와 만나고 여기에서 5분 더 걸으면 강화여고가 나온다.

가을 낙엽을 안고 재잘대는 여고생들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화살표를 따라 몸을 틀면 일반 집들 사이로 검은색 기와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바로 첫째 길의 으뜸 볼거리 중 하나인 한옥마을이다.

지나가던 주민 이성자(53·여)씨가 한옥마을 풍경에 빠진 우리에게 한마디 던진다.

"사람들이 이곳을 지붕없는 박물관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겠죠? 나머지 나들길까지 체험하면 정말 감탄할거예요."

이 말에 힘을 얻어 오읍 약수터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30분. 여기서 시원한 약수물을 들이키고 쉴틈도 없이 곧장 연미정(정묘호란 당시 청나라와 강화조약을 맺은 곳)으로 향한다. 한시간을 내달려 도착한 연미정은 선조들의 숨결로 가득하다.

가슴 아픈 역사를 간직한 연미정에서 옛 역사를 곱씹어본 뒤 내리막 길을 쭉 걸으면 저 멀리 1코스의 종착점인 강화역사관이 보인다.

용흥궁공원을 떠난 지 딱 4시간 만이다.



 

   
 

2코스 '호국 돈대길'(강화역사관~초지진·17㎞)

2코스는 강화역사관에서부터다. 하지만 강화역사관은 지난 11일 강화역사박물관으로 유물을 옮겨 지금은 문을 닫은 상태.

현재는 이곳을 강화역사관이 아닌 갑곶돈대라 부르는데 먼 옛날 전쟁 때 포를 쐈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아직도 포가 역사를 간직한 채 남아있다.

여기에서 은행나무가 심어진 길을 따라 투박한 계단을 오르면 저 멀리 바다가 보이는 2층 정자가 나온다.
망원경에 눈을 대면 바다가 손에 잡힐 듯 펼쳐지고 또 다른 한편에선 무르익은 황금빛 들판이 다가온다.
주민 김학길(68)씨는 "20년 전에는 공원도 없었고 정자도 낮았는데 정말 많이 변했다"며 "젊은 사람들이 이런 곳에 와서 우리 역사를 되돌아보면 좋겠다"고 말한다.

사실 강화나들길 2코스 입구는 따로 있다.

갑곶돈대에서 나와 공원 왼쪽 구석에 자리잡은 기념품 가게 앞에 서면 2코스 출구를 알리는 푯말이 보인다.
2코스의 별미는 자전거 도로를 따라 해안길과 가을 들녘을 감상하는 것. 걷는 게 힘든 사람은 기념품 가게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면 되는데 대여료는 두시간에 5천원, 하루 종일 타면 9천원이다.

자전거 도로에 들어서면 분홍색과 노란색 꽃들이 방문객을 반긴다. 꽃밭 뒤로는 철책이 이어지고 그 너머엔 푸른 바다가 넘실댄다. 30여분 쯤 자전거 도로로 올라가면 중간 중간 바다를 보며 쉴수 있는 쉼터도 있다.
그리고 곧바로 특색음식 거리인 '더리미 장어구이 마을'에 도착하는 데 이 일대에서 내로라 하는 장어요리 음식점이 가득하다. 길건너 바다 쪽엔 횟집도 많아 걷느라 허기진 배를 채우기에 좋다.

장어구이 마을을 끼고 100m쯤 오르면 바람개비를 달아놓은 해안도로 쪽으로 용당돈대, 화도돈대, 오두돈대가 차례대로 나온다.
 

   
▲ 강화성공회성당


조선 숙종 5년(1679년) 강화도 해안 방어를 목적으로 쌓은 49개 돈대 가운데 하나인 이들 돈대는 닮아있다. 현재는 복원이 끝나 깔끔하고 바다를 향해 포를 설치한 구멍은 담쟁이 넝쿨로 옛 역사를 보듬고 있다.
또다시 30분을 가면 왼쪽엔 광성보, 오른쪽엔 드넓게 펼쳐진 갯벌이 장관인 초지진(인천광역시 사적 제225호)이 보인다.

초지진은 조선 효종7년(1656년) 바다로 침입하는 외적을 막고자 만든 요새로 지금까지도 초지진 성벽에는 당시 포탄에 맞은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바로 옆에는 바다를 가로지른 초지대교가 웅장한 자태를 뽐낸다.

이밖에도 초지진 주변엔 강화인삼백화점도 있고 오는 23~24일 사이엔 강화고인돌 문화축제도 함께 열리는 만큼 이 기간에 때맞춰 가면 볼거리가 풍성하다.
 

   
▲ 강화문학관

강화역사관에서 초지진까지 잰 걸음으로 꼬박 5시간 걸리지만 다양한 볼거리 덕에 전혀 지루하지 않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이런 생각에 잠길 때쯤 저 멀리 강화나들길 3코스 입구인 전등사가 손짓을 건넨다.
둘이 걷다 하나 되는 길. 강화나들길은 그렇게 역사와 자연을 한껏 품은 채 사람들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다. /글·사진=황신섭·유예은기자·조현미 인턴기자 hss@itimes.co.kr




#. 가볼만한 곳(1~2코스)

▲강화성공회성당
110년 역사를 뽐내는 우리나라 최초의 성당이다. 1900년 선교사 트롤로프 주교가 설계·감독했다. 전형적인 서양 교회 구조를 그대로 따오면서도 나무·기와로 지어 한국적인 멋을 살린 게 특징이다.
낯선 종교가 생소하기만 했던 조선인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해 서양인 선교사가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안에 들어서면 돌을 깎아 만든 성수대(聖水臺)와 양 벽을 장식한 성화(聖畵), 가운데 놓인 지성소(至聖所)가 눈길을 끈다.

▲강화문학관
용흥궁 공원 한 켠에 마련된 강화문학관에는 강화 출신 문인들의 글과 삶이 전시돼 있다.
이 곳엔 철종 등 옛 인물들의 이야기나 강화에 얽힌 설화가 읽기 좋게 걸려 있다.
강화에서 태어나 강화의 감수성을 글에서 표현해 낸 '강화학파' 인물들의 글도 볼 수 있다.
특히 2층은 강화 출신 수필가 故 조경희 선생의 글과 유품, 그가 기증한 예술품으로 꾸며졌다. 개관은 오전9시, 폐관은 오후6시다. 관람료는 무료.

▲더리미 미술관
2코스 초반 더리미 장어구이 마을 방향 길로 500m가량 들어가다 오른쪽 논길로 들어서면 찾을 수 있는 사설미술관이다. 김경민 관장이 오랜 기간을 들여 수집한 판화와 그림, 조각, 유리공예 등 다양한 작품이 오밀조밀하게 전시돼있다. 정원에는 절구와 항아리같은 전통생활용품이 들어서 있다.
방문객이 직접 도자기를 굽는 도자기 체험도 가능하다. 관람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9시까지며 입장료는 2천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