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술 능가하는 섬세한 공예


강화도에서는 고려궁지를 비롯해 석릉, 가릉, 곤릉 등 고려왕릉과 양도면 능내리 석실고분, 하점면 창후리 고분 등에서 고려 공예품이 많이 발견됐습니다. 고려기와, 고려청자, 금은동제, 금속공예, 옥기공예, 유리공예 등이 그런 것들입니다. 강화도에서 발견된 고려 공예품들은 팔만대장경이나 금속활자와 고려청자와 마찬가지로 고려 민족의 정통성과 예술성을 잘 계승 발전시키고 있었습니다. 특히 하점면 창리 고분군의 C-11호 토광묘(목관)에서는 고려시기 사용된 숭령통보(崇寧通寶)와 함께 목관에 쓰이는 관정, 청동제 거울인 방격접문원형경(方格蝶紋圓形鏡)이 출토돼 학계를 주목시켰습니다. 관정과 고급 동경이 함께 부장된 것으로 미뤄 이 무덤은 고려 강도시기의 귀족묘로 추정됩니다.
고려의 동경은 '고려경'으로 지칭될 정도로 많은 종류와 양이 알려져 있습니다. 청동제 거울은 우리나라에서는 청동기시대부터 고조선의 수장이나 귀족들이 사용해 오던 생활용구이면서 일종의 예기(禮器)입니다. 삼국시대에는 중국의 한경(漢鏡)의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청동기시대의 전통적인 합금 주조기술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같은 전통은 삼국시대로 이어졌고 전통적 바탕 위에 당송경(唐宋鏡)의 유형이나 문양을 받아들여 고려 특유의 '고려경'을 제작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점면 창후리 고분에서 발견된 동경을 통해 대몽항쟁시기에도 우수한 고려경을 제작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발굴한 양도면 능내리 석실고분은 고려 고종의 왕비인 안혜태후의 능으로 추정되는 왕릉급 무덤입니다. 이 무덤에서는 여러 종류의 공예품과 함께 은제봉황문도금장식이 출토됐습니다. 이 장식을 보존처리하는 과정에서 얇은 은판에 압출(押出)기법으로 봉황의 얼굴을 정밀하게 묘사한 봉황무늬가 드러났습니다. 봉황은 왕을 상징하는 용과 함께 상상의 상서(祥瑞) 동물입니다. 용은 왕을, 봉황은 왕비를 각각 상징하는 상상의 동물입니다. 은판에 봉황무늬를 압출한 후 금을 입힌 도금장식은 뛰어난 금속공예기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구나 몽고와 치열하게 항쟁하던 전시에 이런 예술품을 만들었으니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려시대의 금속공예는 범종·향로·반자·정병·금강령·금강저·금동탑·경통 등 금동제 불구류(佛具類)가 유명합니다. 이들 가운데에는 대몽항쟁시기의 기년명 불구류가 있는데, 탑산사 동종(1233) 등 여러 동종은 모두 통일신라와 고려 전기의 전통을 잘 계승하고 있습니다.
고려의 공예는 현대 기술로도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눈부시게 정교한 것이 특징이라 하겠습니다. 강도시기에 피어난 화려하고 정교한 고려의 공예를 인천시민은 물론, 전 국민과 세계에 알리고 우리 모두 이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는데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선문대학교 교수